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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출신 건축가 정세권 기념사업 움직임북촌 한옥마을 지어 조선인 주거지 지킨 ‘디벨로퍼’
강진성  |  news24@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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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2  02: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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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하이면 출신으로 서울 북촌한옥마을 등을 만든 조선 최초 디펠로퍼 정세권(1888~1965)선생. 일제시대 부동산개발로 성공한 그는 독립운동에 관여하다 옥고를 치렀다.

한옥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서울 북촌 한옥마을.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찾는 필수 관광지다. 작은 형태 한옥이 모인 북촌 한옥마을은 수백년 전에 지어진 곳이 아니다. 백년 전 건축가이자 부동산개발업자인 기농(基農) 정세권(鄭世權, 1888~1965) 손에서 태어난 조선인 거주지다.

정세권 선생은 1920년대 서울 종로3가에 있는 익선동과 북촌(가회동·삼청동 일대)을 시작으로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행당동 등에 한옥단지를 만들었다. 경성 곳곳에 만든 한옥마을은 도심형 조선인 주거지가 됐다.

당시 경성은 지방에서 이주한 조선인과 일본인 유입으로 인구가 급증했다. 일본인이 주거지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정 선생은 북촌 지역 토지를 사들였다. 일본인들이 종로에 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옥단지로 조성된 이곳엔 조선인이 터를 잡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일본식 가옥이 서울을 점령했을 지 모른다. 그가 경성 지도를 바꾼 ‘조선 최초 디벨로퍼(developer, 부동산개발업자)’로 불리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최근 서울시는 정세권 선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대한건설협회와 함께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1888년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서 태어났다. 12살에 진주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 진주사범학교에 입학해 3년 과정을 1년 만에 수료할 정도로 명석했다. 22살이던 1910년 고성군 하이면장을 지냈다. 1919년 경성으로 옮기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이듬해인 1920년 부동산개발업체 ‘건양사’를 세우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일제시대 성공한 조선인 사업가로 통한다. 많은 부동산개발로 부를 모았다. 그가 단순한 ‘집 장사’가 아니라 존경받는 인물로 남은 것은 민족자본가이자 독립운동 활동때문이다.

그는 김구 선생에게 독립자금을 보내고 많은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간회와 조선물산장려회, 조선어학회(한글학회)에 관여하며 자금을 지원했다. 조선물산장려회관과 조선어학회관은 그가 지어서 기증한 건물이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정세권 행보는 일제로서는 눈엣가시였다.

1942년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시키기 위한 ‘조선어학회 사건’에서 정 선생은 내란죄로 옥고를 치렀다. 이 일로 뚝섬에 있던 토지 3만5000평을 뺏기고 건양사는 면허취소로 문을 닫는다.

이후 그는 쇠락을 걷다 1950년대 말 고향인 하이면으로 돌아왔다. 1965년 77세 일기로 숨을 거뒀다. 정세권 사후 25년 후인 1990년, 정부는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강진성기자·자료참조=건축왕, 경성을 만들다(김경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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