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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61>화왕산과 신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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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3  01: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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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왕산 정상의 억새길.
   
▲ 관룡사로 들어가는 석문.

◇길모퉁이마다 서린 슬픈 이야기

모든 길은 마을에 닿는다고 한다. 마을이 길을 낳았다면 길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탄생시켰다. 사람들이 지나간 길섶이나 사람들이 머문 곳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들이 살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 건 그들이 남긴 웃음보다 눈물인지도 모른다. 길모퉁이에 서려 있는 웃음이 탐방객들의 걸음을 가볍게 한다면 휘어진 길이 머금고 있는 눈물은 마을과 길이 품은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화왕산 스토리길, 몇 번이나 산행을 했던 곳이다. 지금까지는 봄길의 진달래꽃과 가을길에서 만난 억새의 아름다움을 탐미했던 산행이었다면 이번에는 길섶에 서려있는 옛사람들의 삶을 만나고 길모퉁이에 감춰진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화왕산 스토리길을 찾았다. 무엇보다도 오래 전부터 필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신돈의 굴곡진 삶에 대한 궁금증을 꼭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과연 신돈은 ‘요승’일까, 아니면 ‘성인’일까? 백성들로부터는 성인(聖人)이란 평가를 받았고, 고려말 권세를 누렸던 귀족들로부터는 요승(妖僧)이란 평가를 받은 신돈,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이번 화왕산 스토리길에서 풀렸으면 하는 기대감을 갖고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시창작반 수강생들과 함께 힐링여행을 떠났다.

화왕산 스토리길은 대체로 창녕읍에서 출발하여 자하곡-환장고개-화왕산 정상-산성 서문·억새밭길·산성 동문-허준·대장금 세트장-청간재-관룡사-옥천사지로 종주하는 코스를 선택한다. 그런데 필자의 발목 부상으로 인해 옥천사지에서 출발해서 관룡사와 용선대를 탐방한 뒤 임도를 따라 청간재와 허준 세트장, 화왕산 정상의 산성과 억새밭에 갔다가 다시 원점 회귀하는 길을 선택했다. 옥천 매표소(입장료는 없음)에서 300m 정도 올라가자 옥천사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옥천사지, 그 속살을 보고 싶었다.


 

   
▲ 옥천사지에 남아있는 석축.



◇비운의 혁명가, 신돈

신돈은 옥천사 여종 출신의 어머니와 영산 지역의 유지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출신배경 탓에 신돈은 어려서부터 승려가 되었는데 공민왕이 유학자 중심의 관료체제에 염증을 느껴 개혁정치를 펼치려는 중, 김원명의 소개로 공민왕을 만나게 된다. 신돈은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공민왕의 힘을 업고 대대적인 개혁정책을 단행했는데, 부당하게 겸병 당한 토지를 원주민에게 돌려주고 강압에 의해 노비로 전락한 사람들은 양민으로 되돌려 주는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혁명적인 정책을 폈다. 신돈의 개혁이 실시되자,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였고 해방된 노비들은 ‘성인’이 났다면서 신돈을 칭송했다. 하지만 이러한 신돈의 개혁은 권문세족의 반발을 맞게 된다. 부정부패에 젖어있던 귀족들에겐 신돈의 개혁은 큰 위협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서 그들은 신돈을 ‘요승’이라고 폄훼하며 제거하려고 하나 실패하고, 공민왕의 비호 아래 신돈은 자신의 뜻을 펼쳐 나간다. 권력을 가진 신돈의 세력은 점점 커져 임금에 버금갈 만큼 위세를 떨치자 반대 세력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게 된다. 공민왕은 처음에는 신돈을 믿었으나 점차 그의 권력이 커지고, 왕이 될 욕심을 품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자 그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신돈은 왕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기야 왕을 해치려 하자 이를 알아챈 공민왕은 그를 수원으로 귀양 보낸 뒤 처형시킨다.

신돈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어져 있다. 왕과 귀족이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고려 말은 신돈이 요승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지만, 백성이 세상의 주인인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성인 또는 혁명론자’로 평가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옥천사지 석축 뒤의 숲속에 꽤 넓게 펼쳐진 절터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석물들은 모두 모서리가 깨어져 있거나 쪼개져 있었다. 인위적으로 훼손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신돈이 죽은 뒤에 귀족들이 자신을 헤치려고 한 신돈의 자취를 지우기 위해 정과 쇠망치로 석물을 부순 흔적들이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새벽이면 모두 제 빛을 거두어/지상의 가장 낮은 골목으로/눕기 때문이다’ 고 한 김완하의 시 ‘길은 마을에 닿는다’가 떠오른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신돈은 분명 백성들에겐 별이었다. 그런데 왜 그는 아름다운 별로 남지 못한 걸까? 그것은 백성들의 꿈을 모아 자기 자신의 별을 빛나게 하는데 더 힘을 쏟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자신의 반짝이는 빛을 거두어 백성들이 걸어가는 길을 밝히고 자신을 어두운 골목처럼 낮추었다면 신돈은 역사에 길이 남을 별이 되었을 것이다. 한순간 권력욕에 사로잡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데 실패한 신돈의 굴곡진 삶을 떠올리며 관룡사로 향했다.


 

   
▲ 잘 닦인 화왕산 스토리길.



◇억새꽃이 쓸어놓은 푸른 하늘

절을 창건할 때 화왕산 꼭대기의 연못에 살고 있는 아홉 마리의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겨 절 이름을 관룡사(觀龍寺)라고 했다고 한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절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자 일주문 역할을 하는 석문이 솟을대문처럼 서 있고, 경내를 지나 500m 떨어져 있는 가파른 산기슭 높은 바위 위에 모셔놓은 용선대를 둘러보고 내려와 다시 임도를 따라 허준·대장금 세트장으로 갔다. ‘허준’과 ‘대장금’, 왕과 벼슬아치들뿐만 아니라 백성들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준 드라마를 이곳 화왕산 기슭에서 찍었다는 것이, 잠깐이나마 백성을 위한 개혁정치를 폈던 신돈의 삶과 닿아있는 것 같아 가슴 한켠이 찡해 왔다. 황토가 융단처럼 깔린 소나무 숲길을 걸어서 화왕산성 동문에 들어서자 겨울 억새가 탐방객들을 반겨주었다. 성으로 둘러싸인 화왕산 정상의 분지는 곽재우 장군이 왜군을 무찌른 곳이기도 하다.

화왕산 스토리길, 휘어진 길모퉁이마다 눈물 밴 이야기들이 숨어있고, 길섶 마른 풀잎마다 이 땅의 민초들이 걸어온 역사가 스며있는 듯했다. 백성이 주인인 세상을 꿈꾸는 억새꽃들이 하늘을 쓸고 있는 화왕산 정상에서 만난 겨울바람, 차가울수록 하늘은 더욱 푸르렀다.

/박종현(시인·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허준,대장금 드라마 세트장
허준, 대장금 드라마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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