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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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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4  22: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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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0)

호기심이 발동한 양지와 호남이도 귀남의 곁으로 다가가 같은 쪽을 보며 기웃거렸다. 은빛 보호난간이 죽 둘러진 도로는 깔끔하게 보였다. 아스팔트 도로에 깊이 묻힌 고향집에. 스산하고 아린 기억, 벗어나고 싶던 근원과 마을. 고향산천에게 미안할 때도 없잖았다. 남들은 고향에 대한 추억을 아름다운 낙원으로 그리고 있지만 양지의 고향은 아득한 한 덩이의 아픔이며 슬픔일 뿐이었고 그 곳은 늘 거기 있었던 곳이었고 찾아오면 발을 딛고 막 들어갈 수 있는 그저 그런 데였다. 그러나 자매들의 보금자리는 문명의 편리함으로 유린되어 자취마저 사라졌는데 어디 무엇이 남아있다는 말인지 신기한 생각도 들었다.

“저기, 저 오른 쪽을 봐. 저 골짜기에 고추샘 있는 건 알지? 찬샘이라고도 했고 말이야.”

“응 알지. 아무리 가물어도 사철 시원한 물이 흘러나왔어. 동네 할머니들이 거기서 용왕제도 지냈는데 샘이 아직 그대로 있을라나? 여름에는 아주 차갑고 겨울에는 또 온천수처럼 김이 났는데.”

“나도 아이들하고 같이 가서 거기 놓아둔 떡도 먹고 그랬어. 어떤 애들은 거기 있는 돈으로 과자도 사먹고 그랬는데 나는 겁이 나서 그건 못했는데 명태는 한 번 가져왔다가 엄마한테 혼났던 적도 있었어. 그 샘이 아직도 거기 존재해 있을라나?”

“흘러내린 토사나 가랑잎으로 덮여서 물길이 다른 데로 흘러가고 없더라.”

호남의 말에 아쉬운 듯 대뜸 귀남이 받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가봤어?”

“주영이 죽고 나서 한 동안 마음잡을 데도 없고 할 일도 없어서 죽고 싶은 날 여기 저기 떠돌아봤지.”

언니답게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표정을 지으며 귀남이 말을 붙였다. 죄인인양 주억거리던 좀 전의 상황은 어느새 잊어버린 모양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이 무척 맑고 귀엽다.

“너도 그럴 때가 있었구나. 그래 심란하고 외로울 때 고향은 그런 뭐가 있더라.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를 때 내 나라 내 고향 생각하면서 버텼는데.”

그러더니 또 천하의 귀중품이라도 강탈당한 것을 뒤늦게야 인지한 듯 탄식을 한다.

“그 샘이 없어졌다꼬? 아이고 우짜꼬. 아부지가 거기서 내 목욕을 시켜주고 그랬는데.”

“으엉? 아부지가 우찌 그리 희귀한 짓을.”

“니들은 안 그랬나?”

“혹시 언니 꿈에 사무쳤던 상상 아이가?”

“나도 간간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어쨌든 한 번 가보자. 거기 그 너럭바위가 있는지도 확인해보면 정말인지 꿈인지 알 수 있다.”

“언니는 참 별것도 다 기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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