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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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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8  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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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2)
 
그들은 말없이 한 동안 걸었다. 귀남은 길섶에서 딴 꽃가지 몇 개를 뱅뱅 돌리는 손장난을 했고 호남은 갓 배우기 시작한 춤 연습을 하는지 길 가운데서 스텝 밟는 시늉을 한다. 산천을 휘둘러보며 걷던 귀남이 다시 무언가를 찾아낸 듯 어린애처럼 소리를 질렀다.

“저기 째보아재집으로 가는 길도 남아있었네.”

귀남이 말하는 순간 양지의 뇌리에는 째보에게 괄시 당했다고 분개하던 아버지의 편지가 떠올랐다.

“아부지가 째보아재 집으로 나 데리고 많이 다녔거든. 주머니에서 과자 사먹으라고 돈도 주고 매쪽하게 올라 간 소나무 가지를 탁 잘라서 껍질을 벗겨주는데 그 맛도 기억나. 송기라고 하는 건데 너것들 먹어봤어? 그런데 째보아재는 입술이 째져서 그 맛있는 물을 제대로 못 핥아먹고 줄줄 흘렸는데 얼마나 우스웠다고. 왜 그런지 아니?”

그때의 어떤 장면을 떠올렸는지 귀남이 낄낄거리고 웃자 호남이 귀남의 등을 찰싹 때렸다.

“여기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내비 둬. 실컷 퍼내고 나면 새물이 올라 올 란지.”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옛 기억으로 신이 난 귀남은 두 동생을 번갈아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중얼거렸다.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 니들하고 같이 있으니까 더 좋고.”

나비처럼 두 팔을 활짝 펴고 너울거리던 귀남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저기 골짜기에 아직도 상여집이 있을까? 그 앞에서 빨개벗은 거지들이 졸졸하게 앉아서 이를 잡고 있는 걸 봤어. 우리는 상여 집 귀신이 나왔다고 소리 지르면서 마구 뛰었어. 언니 손을 잡고 뛰어가다 논고랑에 빠져서 죽을 뻔도 했다아이가.”

“저 쪽 고개 넘어 산밭 언덕에는 문둥이가 어린아를 잡아서 간을 내 먹고 볕에 늘어 말린다는 으스스한 소문도 있어서 나무가 많은데도 그쪽으로는 얼씬도 안했잖아.”

“거기 있는 저수지 둑에는 용처럼 큰 뱀이 길가에 나와 똬리를 틀고 있었는데 거기 고둥을 잡으러 갔던 상촌 처녀가 놀라서 못에 빠져 죽었다 아이가.”

“아이다. 죽은 기 아이라 미쳐서 정신이 홰딱 했는데 미친 여자가 아이를 낳아서 업고 댕기다가 상엿집에서 자고 나오는 걸 봤다더라.”

“언니야. 너거는 벤또에 쌀 볶아 무 봤나? 나는 별거 별거 다해봤다. 남의 집 씨암탉 잡아다가 볶아 묵고 군밥 해 먹을 배추 훔치러 갔다가 똥통에 빠져서 똥독이 올라 시껍한 적도 있다.”

“저만 이 동네 살았던 것 같네. 산골짝에 모닥불 피워놓고 콩서리 밀 서리도 했고 고구마 감자를 삼굿해서 먹기도 했다 뭐.”

“언니는 너무 어려서 도시로 나가서 그런 건 안 해 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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