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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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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9  22: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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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는 답말을 하지 않았다. 추억속의 누군가를 또 이어 붙여야 된다. 언제나 앞서서 찬바람을 막아주던 성남언니. 그 시절은 또 양지에게 평생을 끌어안고 살게 만든 트라우마의 시기였다. 양지가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호남이 무슨 재미있는 추억이라도 떠올렸는지 귀에 걸린 듯 입을 찢어 올리며 덧붙였다.

“그리 놀다가 돌아올 때 하이라이트가 뭔지 알아? 머슴아들이 쫙 둘러서서 고추를 내놓고 물총 싸듯이 오줌을 싸서 잔불 정리를 하는 거야. 가시나들은 안 보는 척 보면서 누구 거는 너무 커더라. 누구 거는 너무 볼가졌더라, 작더라. 커더라 하면서 킥킥거리다가 얻어맞기도 했다.”

한 마음으로 동화되어서 재잘거리던 귀남이 갑자기 센치멘탈 해졌는지 울컥한 분위기를 삭히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나 올 때까지 기다리지. 와 그리 빨리 죽었어. 우리 쾌남이랑 호남이랑 같이 왔는데 엄마가 있었으면 얼마나 더 좋아.”

카멜레온 같은 귀남의 변덕에 이끌리면 또 애틋해지고 구슬퍼진다. 무슨 말로든 귀남을 제지하려고 노려보는 호남의 의표는 또 어떤 양상으로 터져 나올지. 그 순간 양지가 다른 말을 꺼내 붙였다.

“우리 아까 말했던 고추 샘에 한 번 가보자.”

“고추샘? 뚱딴지 같이 거기는 왜?”

“언뜻 어떤 영감이 왔어.”

“그건 또 무슨 소리고? 샘물도 말라버리고 없더라니까.”

“아이다, 흙에 묻히고 물길이 다른 데로 돌려졌다 캐도 토사를 긁어내고 물길을 찾으면 다시 복원 될 끼다.”

“참 내. 그래서 뭐할 낀데? 언니도 거기서 굿하고 기도할래?”

오연한 눈빛으로 귀남의 말을 듣고 있던 양지가 진하고 울림이 깊은 음성을 지어냈다.

“몰라, 뭔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내 가슴이 뛰고 전율이 온 몸을 소름 끼치게 뒤덮는다. 자꾸 거기가 거기일지 모른다 싶은 생각이 든다. 여기 좀 봐 여기, 이 팔뚝.”

양지가 확인하라고 내미는 팔뚝을 밀어내며 호남이 코웃음을 친다. 양지는 제 속에서 끓고 있는 갈망의 실체를 호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호남의 진심에 닿지도 않았고 감복시키지도 못한다.

“언니야, 와 이라노, 인자는 니까지 미친 기가? 오늘 일진이 나쁘나. 참말로 미치고 팔딱 뛰겠다. 무섭고 징그럽다. 정신 좀 채리라!”

호남이 안달하며 나무랐지만 양지는 접신이라도 든 사람처럼 강팔라진 안색을 풀지 않고 중얼거렸다. 숨결도 가빴다.

“호남아, 내 말 좀 경청해봐. 그 샘물이 흘러서 진양호 큰물에 보탬도 되겠지. 그렇지. 우리가 기억 못하는 수수 많은 과거가 겹치고 숙성되어 오늘의 밑거름이 되는 걸 우리는 알지 못하는 거야. 나 거기다 내 꿈자리를 현실화 시킬 거야. 안달복달 네 눈치 안보고 내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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