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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을 알아보는 스님
황광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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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0  18: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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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지

도서관 서가에서 허술하게 보이는 책 한 권을 빼들고 잠깐 망설였다. 제목도 ‘개·똥·승’이라 어설펐는데 책장을 넘겨보니 아이들 그림, 어른 그림에다 사진까지 더해진 책이라 허접하게 보여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마지못해 선택했다.

진엽스님은 참 따뜻했다. 황금개띠해라고 하며 개라도 거창한 개를 그리려 하는 세상 사람들의 욕구하고는 다른, 그냥 개와 함께 수도하는 여승 진엽이었다. 책이나 글을 통해 알려진 남자스님들은 많다. 화려한 명성에다 감동적인 설법과 글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분들을 꽤 알고 있는데, 이분은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책을 몇 장 넘기니 낯섦이 사라져버렸다. 공부를 제대로 한 스님이 작은 사찰에서 작은 아이들과 작은 개들과 그냥 살아가는 모습이니 낯설 리가 없다. 정답고 정다웠다.

짧은 글 속에 수줍게 생명존중을 말하는 진엽 스님에게서 ‘참’을 읽었다. 꾸밈없는 글은 자꾸 뭘 꾸며대서 표현하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약한 바람에 들리는 풍경소리처럼 은근하게 시간을 견뎌 은행나무어린이집 아이들과도 개들과도 사이좋은 관계를 지었다.

진엽 스님은 엄마 개 선우와 딸 개 오페라와 파랑이랑 함께 수도하고 있다. 스님은 개를 키운다고 하지 않고 같이 산다거나 함께 수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개들을 기꺼이 도반이라고 일컫는다. 선우가 낳은 새끼는 여섯 마리였는데, 튼실한 넷은 다른 곳으로 입양되었다. 가장 약한 둘은 엄마랑 남았다. 짖는 소리가 예쁜 오페라와 너무 약해서 파랗게 보였던 파랑이는 스님과 들숨날숨을 함께하며 사찰을 지키게 되었다.

매일 경내 개똥을 찾아 수거하는 진엽 스님은 냄새만 맡고도 선우 것인지 오페라 것인지 파랑이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사찰의 한식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모든 걸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데 있었다.

진솔한 글들이 내가 도중에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들었다. 만만하게 보이던 은행나무어린이집 아이들의 그림 속에 있는 개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사형이 그린 어른 그림도 글과 같은 향기를 뿜었다. 진엽 스님이 찍은 사진은 글과 퍼즐을 맞추며 읽는 사람의 심정을 살살 건드렸다. 처음에는 혼잡해서 못마땅했던 아이 그림과 어른 그림과 사진들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받아들여졌다. 무술년 개띠 해에 내게 선물처럼 나타난 책이 되었다. ‘개·똥·승’은 일 년 전에 출간됐지만, 개띠 해를 맞아 다시 인쇄돼 주목을 끌었다. 황금개가 아닌 소박한 백구, 진엽 스님의 네 발 달린 도반들 덕에 개띠 해에 행복하다.

황광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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