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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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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1  23: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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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그래, 우리 미래의 대 역사를 위해서.”

귀남이 너스레떠는 동작으로 양지와 호남의 손바닥을 소리 나게 짝짝짝 돌려가며 쳐댔다

“오빠가 참 고맙다.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나롱부리고 있는데 병원일 뒷수습은 오빠가 다 알아서 해주고. 그럼 우리 용연사로 간다?”

양지와 귀남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남은 지체 없이 용연사 쪽으로 차를 몰았다.

“기억 속에는 늘 어떤 그림이 있었어. 누렇게 바랜 종이 벽에 수염이 긴 어떤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앉아있는데 호랑이가 발밑에 엎드려서 폭포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어. 왠지 쓸쓸하고 한가하고 슬프고 아련한 그런 느낌을 어디서 받았는데, 거기가 어딘지 거기만 가면 머릿속이 탁 트이고 캄캄한 것 모두가 풀릴 것 같았는데…….”

처음 용연사에 갔을 때 산신각 문을 열자마자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바로 저거야, 하고 귀남이 말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밥을 먹었어. 무언가 엄숙하고 귀기스러운 분위기였지. 귀남이도 초파일날이나 어머니의 등에 업혀왔었던 모양이라고 양지는 어릴 때의 제 기억과 맞추면서 짐작했다. 귀남을 마지막 보내야 한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어디라도 달아나고 싶은 심정으로 하염없이 달리다가 바라본 붉은 저녁노을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양지는 귀남으로부터 또 어머니와 일치하는 그 노을에 대한 기억을 듣고 놀라웠다. 하지만 자매들의 뇌리에 박혀있던 그 오래 된 탱화는 절을 인수한 승려에 의해 산신각을 신축하면서 잡다한 쓰레기와 함께 연기가 되어 날아가고 강렬한 삼원색 탱화로 대체되었다.

“아이구, 성제 간에 의도 좋으시지. 저리 같이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양지네가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놓고 절 마당으로 올라가자 샘에서 나물거리를 씻고 있던 공양보살이 알은 체를 했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하는 표정으로 호남이 양지를 보고 슬며시 웃어보였다.

마지막 계단에 오르자 귀남은 쪼르르 산신각 쪽으로 먼저 걸어갔다. 이런 귀남을 보고 있던 양지는 귀남이 오면 법당으로 셋이 같이 갈 셈으로 여기서 기다리자고 했다. 양지가 요사채의 계단에 엉덩이를 걸치자 호남이도 곁에 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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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요한 분위기 속에 잠겨있으니 속에 품고 있는 복잡한 심상도 아랑곳없이 시선은 평화스러운 것들을 따른다. 깊이 모를 한적함이 두 사람을 품어 들이고 솔바람에 살랑대는 나뭇잎이며 지저귀는 새소리, 간간이 울리는 풍경소리까지 자연의 하나가 된다. 이대로 이런 순간만이면 누가 삶을, 생을 복잡하고 고통스럽게 여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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