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7)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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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속으로 미래 너머로 연속 자맥질하면서 고통의 꼬투리를 엮어가는 것이 인간의 한 생이다. 뽑아 던지지도 못하고 녹여 없애지도 못하는 이 초라함, 피폐함의 근원은 무엇인가. 대체 인간은 무엇 때문에 왜 사는 걸까. 양지는 까닭모를 한숨을 후우 흘려보냈다.


양지는 얼마 전 서울에서 내려 온 강 영수 사장과 함께 이곳을 다녀갔다.

“나이 드니까 춥고 시려. 곰비임비 그 인간 생각이 자주 나고. 나도 저한테 하노라고 했지만 저도 나한테 참 잘했지. 살림 작파해놓고 사내 모냥으로 헤집고 댕기도록 살림도 잘 살아주고 그랬는데.”

눈에 맺힌 물기를 지우면서 극락전에 안치해 놓은 추 여사의 영가를 찾아 간 강 사장은 회한어린 이별을 상기한 듯 고요하고 깊은 참배를 했다.

“극락전이라, 장소도 좋네. 늘 극락에 살 것 같아서 나도 좋다. 이것도 최 실장 뜻인가?”

“저도 아주머니한테 입은 은혜가 많았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그랬으니 너무 죄송했습니다. 사람을 믿고 깊게 신뢰하지 못한 병은 저한테 있었던 것 같아서……. 제 마음 위로하자고 그랬어요.”

“저쪽에 가면 영이 통한다니 최 실장 뜻도 고맙게 받아 줄거라.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고 워낙 최 실장을 아꼈던 사람이니까.”

둘은 한참이나 추 여사와 같이 했던 추억을 나누면서, 이제는 거리마저 멀어진 서로의 현재를 묻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간 살피듯이 양지를 바라보고 있던 강 사장이 양지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최 실장, 짐 싸서 오늘 당장 나하고 가자.”

강 사장은 무슨 뜻인지 얼른 못 알아듣고 멀뚱거리는 양지의 손부터 잡았다.

“사실은 나 최 실장이 아직도 이러고 있으면 데리고 갈라고 겸사겸사 내려왔어. 쓸모 있는 자재를 방치해서 녹슬고 망가지게 하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잖아. 더구나 사람, 최 실장 같은 인재를.”

“어떻게 갑자기 그런 말씀을.... .”

“갑자기가 아니고 일부러 내려왔다니까.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회사를 맡기고 쉬고 싶은데 그게 최 실장이면 해. 사심 없이 근실하게 내 일처럼 일한 사람을 경황 중에 너무 소홀하게 떠나보냈나 후회스럽기도 했고. 민첩하고 판단력 있고 일머리 알아서 추진력도 대단했었다고 공장장은 지금도 최 실장 같은 사람 없다고 한다. 그 사람이 남의 칭찬 잘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여기서 할 일이 있습니다.”

“친오빠도 아니고, 고종오빠 목장에서 소똥이나 치우고 짐승들 사료나 챙겨주는 일?”

“그 일도 겉만 보고 무의미하게 말할 건 아니었어요. 이제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쌓아 온 것들을 진지하게 풀어서 자산으로 사용할 겁니다. 전보다 훨씬 성숙해 진 것 같지는 않으세요?”

“말랐고, 늙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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