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에 이르는 길
문복주(시인)
화엄에 이르는 길
문복주(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8.02.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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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주

약골로 태어난 나는 평생을 비실 비실거리며 산다. 결국 이번 겨울도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고야 말았다. 폐렴이란다. 환자복을 입고 링거병을 달고 병실 침대에 앉아 있으면 그야말로 일순간 수감생활을 하는 죄수나 목줄 매인 개처럼 옴짝달싹하기 힘든 중병 환자로 바뀌고 만다.

삼시 세끼 어김없이 나오는 밥을 먹고 나면 할 일이 별로 없다. 5인실 환자들은 모두 중앙에 놓인 TV를 열심히 바라본다. 그것도 지치면 어느새 비몽사몽 수면 상태에 빠진다. 잠도 두 세 시간이지 매일 먹고 자고, 자고 먹고 하면 마치 약에 취한 듯 사물은 둥둥 하늘을 떠다닌다. 오래간만에 갖는 한없는 시간과 무료와 사회로부터의 격리가 행복인지 불행인지 아직 판단이 가지 않아 낯설기만 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슬슬 링거주사 거치대를 끌고 병원 여기저기 구석을 탐험하러 다닌다.

참 이 세상에는 아픈 사람도 많다. 병원은 매일 인산인해다. 낮에는 도깨비 시장처럼 버글대다 밤이 오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깊은 산골 산사처럼 적막하고 을씨년스럽다.

문득 병원이 자동차 1급 정비공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도 5년이나 10년을 타면 기계가 마모되어 헐고 고장이 나서 부품을 갈아 끼우고 고쳐서 다시 타고 다닌다. 하물며 50∼60년 밤낮으로 몸뚱어리를 끌고 다니니 성한 곳이 어디 있으랴. 눈 귀 입 목 위 콩팥 간 쓸개 췌장 대장 어깨 무릎 갈비뼈 심지어 피 살 폐 심장까지 성하지 못해 병원에서 부품을 갈아 끼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은적(隱跡)해온 이곳은 화엄사나 해인사보다 더 고결한 선승들이 밤낮으로 화두를 깨우치고 있다. 머리통에 여러 개 쇠막대기를 박아 늘 깨어 있는 김씨가 법고를 울리면 나는 일어나 공양을 한다. 온몸 뒤틀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휠체어에서 몇 달째 장좌불와 하며 내게 스티븐 호킹의 신화를 설법하고 오대양을 뱃속에 담고 출렁이는 양씨는 고통이 정점에 이르면 정신을 잃고 독경을 외며 비겁한 내 어깨에 죽비를 내려친다.

야, 이년아! 이 ○○년아, 나 죽기를 하루에 백 번씩 비는 죽일 년아! 다리나 팔 하나쯤은 서슴없이 자르고 콩팥, 골수, 췌장도 나누는 그들 사이를 서성이며 언제 나는 저 법문을 지나 화엄에 이를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창가 쪽은 허전하다 못해 황홀하다.

 

문복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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