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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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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7  01: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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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양지의 마음속에는 역시, 라고 인정해주던 강 사장의 듬직한 손길에 실려 왔던 힘이 남아있었다. 그렇다, 나는 다시 힘껏 일어나야한다. 사람은 한 철 화려하게 피었다가 흩어지는 꽃잎이 아니다. 그러나 이 현실은 얼마나 더 나아가야 벗어날 수 있는 먹구름 같은 하늘인가. 기쁨은 봄 한 철 꽃구름 같고 슬픔은 만성 치통과 같다. 문득 밀려오는 쓸쓸함으로 젖어드는데 호남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언니야, 혹시 박 현태 씨 소식 오빠가 말 안 하더나?”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이라 양지의 눈길이 흠칫 호남에게로 가서 꽂혔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과민한 반응에 대한 쑥스러움을 감추면서 시큰둥하게 답을 짓는다.

“어디선가 잘 살겠지 뭐. 와 오빠가 뭐라 했는데?”

“어마, 에나 모르는 갑네. 난 오빠한테 들은 줄 알고…. 그냥 안들은 걸로 해.”

황황한 기색으로 뱉었던 말문을 수습하는 호남의 태도에 묘한 여운이 깔렸다. 양지는 아금받은 동작으로 호남이 쪽으로 몸을 돌리며 호남의 눈길을 응시했다.

“야. 그게 뭔데 꺼냈다가 도로 감춧노?”

“언니 기분만 상할 거라서 그란다. 그 사람하고 남 된지 언젠데. 그냥 몬 들은 척해라 내가 실수 했다. 실수, 실수.”

황황하게 실수를 자인한 호남이 호들갑스런 손길로 제 입을 두어 번 때리는 시늉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러니 더 듣고 싶다. 옛사람 됐다는 말은 맞지만 다 사그라지지 않은 고갱이는 아직 가슴 한편에 남아 아리고 쓰릴 때도 있다. 언니 맘 상할까봐. 호남이 입을 닫는 여운마저 짠하게 강해졌다.

“끝까지 말 안할 거면 꺼내지도 말든지, 삼키고 뱉는 것도 내 맘대로 못할 바보 천치야 내가? 오빠가 뭐랬는지 물었다 내가.”

흘러가는 말처럼 예사로 꺼냈던 말인데 비해 양지의 반응은 뜻밖으로 예민했다. 놀란 기색이 된 호남이 망설이던 입을 열었다.

“오빠들 모임에 그쪽 지역 회원이 있는데 세미나에서 우연히 한 방에 자게 되었단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누구누구 그 사람은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보게 됐나봐.”

말하다 말고 빤히, 양지를 바라보는 호남의 얼굴에 망설임과 연민이 실렸다. 또 말을 자른 것도 물론이다. 망각의 늪에다 영영 수장시켜버리고 멀리 했던 대상이 아니다. 양지는 재우쳤다.

“물으니, 그래서?”

“중국에서, 그만하자. 꼭 끝까지 들어야되겠나?”

“그래.”

“하아 참 환장하겠네. 중국에서, 회사일로 거기 상주를 했나봐. 풍토병인가 뭔가로-.”

“야가 참 감질나게 한다. 풍토병, 거기도 그런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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