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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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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1  23: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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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상을 찌푸리며 바라보고 있던 현태어머니가 참고 있던 것을 마침내 쏟아놓는 것처럼 말문을 열었다.

“아이구나 세상에 단술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네. 그러이 꺼내 날랜 백정이 달라 들어도 살 한 점 추릴 수 없이 그렇케 말라 비틀어졌제. 우리 누렝이가 없기 망정이지 달라들까 겁난다. 기왕지사 넘보다 낫게 살끼라꼬 독신생활인가 뭔가로 하모 살이라도 좀 통통하게 쪄야제.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라도 과부는 금돈이 서 말이라꼬 옛말에도 있는데. 쯧쯧쯧. 니가 내 움딸 같애서 하는 소린데 니도 그 성질머리 좀 곤쳐서 살아라. 여자는 맘 묵기 따라서 현모양처도 되고 논다니도 되는 긴데, 니는 내가 볼 때 이도 저도 아니고 꾀살스런 손말명이 빼끼 안 되겄다.”

양지는 결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닌데도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었다. 다른 사람, 다른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하는 충고일망정 벌써 자리를 박찼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했다. 저를 비난하는 현태어머니의 어투에도 양지는 왠지 모멸스러움이 덜 느껴졌다. 저도 분명히 가리사니 잡지 못하고 있던 제 신상에 관한 신랄한 분석이 가려운 데를 찾아서 긁어주는 듯 시원함마저 들었다. 콧등이 시근하게 현태가 보고 싶었다. 추 여사가 억지로 끌어 붙이려던 병훈이 있기는 했지만 양지가 진정으로 가슴에 품었던 사람은 박 현태가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였다. 대범한가 하면 너무 약았고, 강한 가하면 또 너무 연약한 자신의 본성을 가리기 위해서 일부러 고집스럽게 눈동자에다 힘을 넣었다. 남들과 뒤섞이면 찾지 못할 것 같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더 팽팽하고 더 뻣뻣하게 굴었다. 그리고 거기엔 늘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이런 양지의 속내를 남들은 속속들이 잘 모른다.

어설픈 미소를 지으면서 양지가 곁붙였다.

“저도 저 자신이 정말 마음에 안들 때가 많아요.”

“그 서슬은 다 어데 가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캐라.”

“아임더. 그때가 언젠데요.”

“하기사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사람 맹근다꼬 빈 말은 아니제. 지금이사 말이지만 우리 현태가 끝까지 니한테 목 안 매달고 장개를 간 거는 내 탓도 있다. 그 놈아가 하도 졸라서 가서 보기는 봤는데 나도 첫눈에 니가 그리 호감은 안 갔다. 삐삐 마른 몸띵이는 입이 짜른 증거고 성이 마른 탓이라. 입이 짜르면 들오던 복도 나가는 거 한가진 기라. 그라고 또 싫은 거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따지게 생긴 그 매서운 안총이다. 상대방을 푸근하게 봐주는 덕기가 없는 기라. 층층시하 어른 받들고 시동생이며 집안 권솔들은 물론이고 내리내리 한 동네서 사는 이웃들 인심까지 , 그 장장한 일을 할 안주인 며느리가 성품이 그래갖고 되겄나. 따질수록 좋은 거는 실오래기 빽기 없는 기고 콩팥을 다투다 보모 결국 쪼가리 빽기 안 남는 긴데.”

양지가 원하는 냉수 그릇을 건네 준 현태어머니는 다시 맞은편 자리에서 양지쪽으로 바투다가 앉으면서 잠시 잘랐던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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