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씨, 근본을 생각하다
문복주(시인)
문씨, 근본을 생각하다
문복주(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8.02.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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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주

일생을 살다보면 몇 번은 마음에 충격을 먹는 일이 생긴다. 내게 몇 안 되는 충격 가운데 하나가 ‘문씨, 근본을 생각하다’이다. 교사생활 이십여 년을 청산하고 함양 지리산 산골에 들어와 집짓기에 몰두할 때 이웃에 사는 식당 주인 이 사장은 술이 취한 날은 나를 찾아와 온갖 참견을 했다.

그날도 술 취한 그가 왔다. “어이, 문씨. 이리와 봐. 크윽” 그가 내 쪽을 향하여 손짓했다. 처음에 나는 그가 내 쪽에 있는 누구를 부르나 하고 옆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어이, 문 씨, 이리 와 보라니까!” 순간, 내 피가 역류하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맥박이 심하게 뛰고 심장이 쿵쿵 뛰어 올랐다. 수치와 모멸과 분노의 치가 온몸을 경련시키고 있었다.

뭐라고, 문 씨? 아니 이 자식이 미쳤나! 나를 보고 반말을 찍찍 싸며 어이, 문 씨. 이리 와 보라구! 밤이 되어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문 씨, 문 씨, 문 씨. 계속 머릿속에서 충격의 문씨가 맴돌았다. 이제 시골에 오니 내 인생이 막장 문씨로 전락하고 마는 구나. 눈물이 핑 돌고 서글픔이 밀려왔다. 평생 문 씨라는 말을 듣고 살아 본 적이 없었다. 문 시인, 문 선생님, 문 회장님, 문 교장 등.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분노와 좌절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했다. 내 이놈을 내일 아침이 오면 당장 달려가 내게 했던 무례와 난폭을 사단내고 말리라.

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옆에서 말한다. 당신 원래가 문 씨가 아니었우? 문 씨보고 문 씨라고 불렀는데 뭘 그리 화내우? 화내는 당신이 나는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믿었던 아군에게서 다시 한방 먹고 나니 세상이 캄캄하였다. 그런데 정말 나는 왜 이리 분노하고 있는가.

말 그대로 하면 사실 나는 문씨가 아니던가. 문사장도 아니고 문선생도 아니고 문 회장도 아니고 내가 타고 날 때부터 받아 가지고 나온 씨, 문씨. 죽을 때 ‘현고학생남평문씨지묘’라고 새겨지는 문 씨 아니던가?

이사장이 제대로 정확히 나를 불러주었는데 나는 왜 이리 분노하는가. 비로소 내 눈가에 역린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나는 그 동안 천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온 것이다. 이 허위의 가면을 버리지 않으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사람은 죽음이 가까워 와서야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무엇을 얻으려 그리 명예와 부와 공명을 쫓아다녔던가. 나는 슬며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며 큰 깨달음을 준 이사장에게 고마워했다.

 

문복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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