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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포럼]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쓴 ‘山明水淸’
전점석(창원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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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4  0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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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하룡의 시 ‘어두운 흔적’을 보면 ‘마산박물관 뒤/ 문신미술관 골목 입구/ 시선 끄는 돌 하나// “山明水淸 子爵 齊藤實 書”/ 음각 글씨 또렷한/ 화단 기단으로 놓인 돌// 묻어버리지도/ 깨어 없애지도/ 못하고// 길손/ 더듬거리게 하는/ 일제 잔재’ 이 시를 읽고서 나는 마산박물관 뒤에 있다는 금석문이 궁금하였다. 여러 번 그곳을 다녀왔지만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지난 1월 9일, 박물관으로 갔다. 비석은 주차장 옆의 화단에 있었다. 시의 내용처럼 기단으로 활용되고 있지는 않았다. 비석은 2개였다. 하나는 제3, 5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實)가 쓴 ‘山明水淸’이었고 또 하나는 제5대 마산부윤 板垣只二가 쓴 ‘水德无彊’이었다. 사이토 총독은 3.1운동 후인 1919년 8월에 제3대 총독으로 와서 1927년까지 문화통치를 한 인물이다.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강우규 열사로부터 폭탄 투척이 있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2년 후인 1929년 제5대 총독으로 다시 왔다. 이 금석문은 5대 총독일 때 쓴 것이다.

비석이 언제, 무슨 연유로 이곳에 있게 된 것인지를 물어보려고 박물관 사무실을 찾았다. 담당공무원은 이 비석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친절하게 같이 살펴보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궁금한 점을 확인해주었다. 일제의 마산부(馬山府) 당국은 1927년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1930년까지 4년 동안에 마산지역 최초의 상수도시설공사를 하였다. 1945년의 인구 5만명을 염두에 두는 계획에 의해 총 45만원의 사업비로 봉암수원지와 추산정수장을 완공했다. 현 마산박물관 자리에 있었던 추산정수장은 1928년 7월에 착공하여 1930년 3월 20일 준공하였으며 정수능력은 1500㎥/D이었다. 1930년 5월 6일부터 마산부민(馬山府民)들에게 식수를 공급하였다. 이 당시의 給水인구는 겨우 800호, 4000명에 불과하였다.

상수도시설이 없었을 때는 공동우물을 사용하였는데 정수장 준공 이후에는 우물이용자가 급감하여 수도시설이 없는 일부 지역주민과 형무소 재소자만이 이용할 정도로 추산정수장은 마산시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산박물관 뒤에 있는 비석은 바로 이 추산정수장 완공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수장의 깨끗한 물을 생각하면서 ‘水淸’이라고 쓴 것 같다.

금석문을 처음 볼 때에는 ‘산명수청(山明水淸)’이라는 말은 밝은 분위기, 긍정적 이미지였다. 태평성대에 멋진 지식인이 덕담 한마디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글쓴이가 조선총독이라는 걸 알면서부터 지배, 피지배의 입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우리의 산하를 짓밟았다. 식민지배 하에 있는 우리는 산하가 아름다울수록 더 슬퍼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짓밟힌 우리의 산하는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수장 준공에 대해 조선인들이 감사하게 생각할거라고 생각하니 당연히 그들의 눈에 보이는 산은 밝았을 것이다. 비로소 나는 산을 볼 때에도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자기정체성을 분명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입장에 따라서 산을 보는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너그러운 중립적 입장이 아니고 지배를 당하는 입장에 있는 식민지 피지배 민족이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의 지식인인 노산 이은상이 1935년에 쓴 시조 ‘가서 내 살고 싶은 곳’의 일부를 보면 ‘산은 근심의 쌓여/ 울멍줄멍 솟아 둘리고/ 물은 여흘여흘/ 눈물 띄워 흐르는 나라/ 가서 내/ 살고 싶은 곳/ 거기는 또 내 묻힐 곳’이라고 하였다.

해방 후에 자유당, 민주공화당의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보여주었던 친독재의 노산이지만 조선일보사에 근무했던 1930년대 중반에는 비록 독립운동은 안했지만 식민지의 지식인으로 시조부흥운동과 국토순례를 하고 있었다. 그가 본 산은 사이토 총독이 본 산과 달랐다.

사이토 총독이 보는 산과 물은 밝고 맑다. 그러나 노산에게 산은, 근심으로 쌓여있고 물은 눈물 띄워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전점석(창원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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