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아동센터에서 근무할 때였다. 초등학생들에게 3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명함을 만들게 했다. 미래의 꿈이 정해져 있으면 도전하려는 마음이 더해져 다가서기 또한 쉬울 거라 생각했다. 장년이 되어 지도자의 위치에 가 있을 때를 상상하며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직함이나 직장명, 로고 등도 함께 넣어 근사하게 만들기를 바랐다. 색연필, 싸인펜 등을 사용하여 알록달록 모두들 열심히 그리고 꾸몄다.
한데 일분도 채 되지 않아 한 아이가 팔베개를 하고 엎드려 버렸다. 아프냐고 물었더니 벌써 다했다며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아이의 팔꿈치 밑에 깔려 꾸깃한 명함을 꺼내보니 ‘노숙자’ 라는 단어만 낙서처럼 흘려 써 놓았다. 좀 더 생각해보고 정성을 기울이라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수업을 마치고 조용히 불렀다. 신학기라 다른 아이들은 신이 난 얼굴인데 갓 오학년이 된 그는 얼굴가득 짜증을 담고 있었다. 노숙자가 뭔지를 알기나 하는지, 노숙자가 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래도 꿈은 가져야지. 평생 남의 도움으로 살래? 너는 먹는 것을 좋아하니 식당 사장님이 되어 먹고 싶은 것 네 마음껏 해 먹는 거야. 어때? 이제부터 너를 사장님이라 부를게”
그날부터 이 년여를 나는 그 아이의 이름대신 ○사장님으로 불러주었다. 책상 밑에서 뒹굴거나 싸움을 걸기 일쑤였던 그가 얼마가 지난 후에는 사장이 된 것처럼 센터 동생들을 지휘하며 이끌었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난 한 지인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월급이 오르면 아들이 하고 싶은 것 마음껏 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혼자서 아들하나를 키우는 그녀가 행여 임금인상으로 한 부모 가족 지원액을 넘겨 복지혜택을 못 받게 되면 어쩌나 싶었다. 허리 휘도록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명함에다 당당하게 ‘노숙자’라고 써 놓았던 그 일이 생각나니 웬일일까. 아이들의 30년 후 명함에서 뿌듯한 희망을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허숙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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