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8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84)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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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렇게 한심해 보입니꺼?”

“그래, 앞으로 늙어서 병까지 들어봐라 늙다리 추물 빼끼 안 된다.”

양지는 다시 울먹해졌다. 남과 어울려서 남 하는 듯이 같이 속을 열어놓고 해 본 일이 과연 몇 가지, 몇 번이나 됐을까.

“저도 한 잔 주세요.”

“그래 인제라도 배워라. 속이 끓고 아파서 잠이 안 올 때는 단방약일 때가 있어.”

현태어머니가 채워주는 잔을 입술에 대는 식으로 시작된 대작이었지만 양지도 차츰 자신의 속에서 풍선처럼 무언가 부풀어 올라 얼굴 근육을 홧홧하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 남자를 뛰어넘어서 존중 받는 삶이 제가 그리던 꿈이고 희망이었어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그녀가 중얼거리자 현태어머니가 빠르게 받아 챘다.

“노력 안하고 계산만한다고 되나? 억지 쓰지 말고 바로 말해 이것아. 흥, 부처님 손바닥이고 오뉴월 하루 볕이 어딘데 누가 누굴 속여. 지금도 맨 얼굴로 앉아있지만 나는 네 속을 훤히 알지. 내 가스나 남의 가스나 없이 직장 생활하기 싫고 처녀 생활 지루하모 시집을 가제. 그게 서는 또 냄편한테 여왕 대접 안 해준다꼬, 남의 집 남자들 비교해 가면서 무능한 타박만 하지.”

“자꾸 요즘 것들 요즘 것들 하시면서 여자들만 나무라시는데 다 그런 건 아녜요. 물론 연세가 있으니까 우리들보다는 세상이치를 더 많이 깨닫고 계시겠죠. 그렇지만 세상의 딸들이 아주머니 마음에 안 들도록 된 데는 아주머니도 일조를 하신 겁니다. 아주머니도 젊었을 적부터 여자 스스로의 자긍심을 안고 살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어떤 여성학자가 그러데요. 어머니들은 나이 들면서 점점 자신이 젊었을 적에 시집살이 하면서 절치부심했던 결심을 잊어먹고 동성인 며느리 편은 안 들고 아들 쪽으로 기운다고요. 그러면서 다시 며느리와 갈등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젊은 며느리들의 저항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어머니들이 바뀌지 않으면 여성들의 불평불만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을 거래요.”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러이꺼내 성급하고 말재주 없는 남자들이 조목조목 설명해서 이해시킬 줄도 모르고 마구 검센 힘자랑으로 나가는 기제.”

“엄마들이 바보처럼 참고 살면서 아랫사람들의 길을 열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잖아요.”

“그건 맞다. 내가 사회생활하면서 깨달은 긴데 무식해서 그래. 하기사 요즘 것들 유식해도 별수 없이 부부싸움 밖에 잘하는 게 없더라만.”

“자기 인생이나 인권이 중요하다는 걸 아니까 용기 있게 나가는 거잖아요.”

“내 딸년들 경우를 봐도 니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 남편이 하루 저녁만 밖에서 자고 들어와도 니중내중이 나니 탈이지. 남자가 자는 데가 와 꼭 색시 집이고 노름방이라꼬만 생각는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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