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극상-극하 넘나드는 ‘개의 역설’
[설특집]극상-극하 넘나드는 ‘개의 역설’
  • 김지원 기자
  • 승인 2018.02.13 01: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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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갈매기, 점박이물범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대회 마스코트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88올림픽 호돌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갈매기 두리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물범 3남매 비추온, 바라매, 추므로는 추억의 이름이 됐다. 잘 모르시는 분도 많지만 지난해 피파 U-20월드컵 마스코트 차오르미도 호랑이였다.


이렇듯, 특히나 호랑이가 마스코트로 인기를 누리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나름 명망있는 진돗개는 한번도 마스코트에 임명되질 못했다. 평창올림픽 마스코트가 될 뻔 했으나 안타까운(?) 사연으로 탈락하기도 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의 발도(닥스훈트)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코비(양치기 개) 처럼 ‘개生’에 빛나는 캐릭터들도 남아 있건만 우리나라에선 진돗개나 동경이나 풍산개, 하다못해 삽살개에게도 기회가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수호랑과 반다비가 지금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한민족 답게 호랑이와 곰은 세트로 사용됐다.)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가상캐릭터인 2002년 월드컵 마스코트는 살짝 넘어가도록 하자. 일종의 비젼(어벤져스 캐릭터) 같은 거였다.


접두사 '개-'의 환골탈태

수호랑의 인기폭발이 부럽긴 하지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지 않나. 황금개띠 해 개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올해 무술년은 10간(干)의 무(戊)가 노란색과 12지(支)의 술(戌)이 묶여 ‘황금개띠’해가 된다. 황금개띠 해야 말로 요즘 ‘개生’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개’가 붙으면 흔히 안좋은 일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던 이 종족에게 최근은 그야말로 황금기다.

속칭 ‘개좋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개-’는 ‘헛되다, 쓸데없다. 정도가 심하다’ 같은 의미를 더하는 접두어다. 개살구, 개꿈, 개고생 같은 말들이 있다.

해마다 “국어가 말살된다”고 울부짖어 오던 와중에 이 접두사 ‘개’는 환골탈태하고 말았다. 나쁜 의미로 쓰이던 것이 극상의 좋은 상태를 표현하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 만사형통의 접두사가 된거다.

고3이 시험을 망치면 ‘개망함’이 되고, 지하철 쩍벌남은 ‘개매너’가 된다. 설에 만난 삼촌에게 세뱃돈을 타면 ‘개꿀’인데 삼촌이 준 줄 모르고 숙모가 또 주면 ‘개이득’이다. 좋을 때와 나쁠 때가 모두 통하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한편으론 ‘짱좋아’ 세대가 ‘개좋아’ 세대를 비난 하자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유행은 돌고도는 것이니 또 한 세대동안 나랏말이 무탈하게 지나가길 기대해볼 밖에.


또하나의 가족 댕댕이와 멍집사

개가 가축이 된 데는 사냥을 위해 야생종을 길들였다고 하는 설이 유력한데 ‘토사구팽’은 옛 말, 잡을 짐승은 없어도 모실 댕댕이는 한가득이다. 조상이 늑대인 개는 학명 ‘Canis lupus familiaris’에 회색늑대를 의미하는 단어와 가족처럼 친밀한 존재를 표현한 familiaris가 들어 있다. 개가 사냥꾼의 동반자가 되었던 것은 적어도 3만6000년 전의 일, 사냥감을 물어오고, 마당에서 집을 지키던 또 하나의 가족은 오늘날 멍집사의 침대를 차지했다.

12지신 중 열한번째 동물인 개는 용맹하고 인간과 친밀한 동물로 여겨진다. 서북서 방위를 가리키는 신이고 오후 7시에서 9시, 음력 9월을 담당하는 시간의 신이다. 바둑이는 바둑의 검은돌과 흰돌에서 온 이름으로 개의 털 색을 보고 불렀던 이름이다. 1948년 문교부에서 펴낸 최초의 교과서 1학년 1학기 국어책이 ‘바둑이와 철수’ 였다. 처음 펴내는 교과서에 ‘바둑아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고 써 넣은 필자는 아마도 애견인이 아니었을는지. 순이와 철수네는 어머니, 아버지와 막내딸 영이와 함께 바둑이까지 한가족이었다.

무술년과 노량대교의 아이러니

400여년 전 무술년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 나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숨을 거두었다. 헌데 올해 무술년은 새 연륙교를 놓고 다투던 남해군과 하동군 사이의 시비가 ‘노량대교’라는 결론을 얻어냈으니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개띠의 트레이드 마크로 항상 등장하는 ‘58년 개띠’는 올해 60세가 된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1958년 출생인구는 92만명을 처음 넘었다. 이 베이비 붐 세대의 애환은 2부제 수업, 입시 지옥, 취업경쟁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다가 1997년엔 IMF라는 된서리도 맞았다. 지금도 애증의 호칭으로 ‘58년 개띠’는 소비된다. 은퇴기에 접어드는 올해도 ‘58년 개띠’의 애환은 진행형이다.

▲ 경남일보 1998년 설날 1면에 실린 사진기사



대통령도 탈출 못하는 반려견 사랑

Man’s best friend 라고 하는 개, 지난해 이 개들의 소동은 만만치 않았다. 연예인의 개에 물려서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반려인들의 분통을 샀다. 체고 40㎝ 이상의 개에게 입마개 착용 의무화가 거론되면서 실정 모르는 소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작 그 개는 체고가 40㎝가 안된다는 것도 논란을 거들었다. 다행히 반려동물 안전관리는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가 해법을 찾아주겠지, 아무렴.

지난 12일 울산과학기술원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적기업 ‘미싱피플’에서 황금개띠 해에 어울리는 선물 하나를 받았다. 리사이클링으로 제작된 강아지 옷이다. 유기견에서 퍼스트독으로 신분상승한 토리를 위한 맞춤형 선물이었다. 개살구가 ‘개예뻐’가 되어버린 세상. 대문간 지키던 멍멍이는 안방에 제 침대를 들여놓았고, 집사는 오늘도 댕댕이의 식량을 벌러 일터로 나간다. SNS의 스타 강아지들은 해마다 달력도 만들어내고 스티커도 뽑아낸다. 늘어지게 낮잠자는 사진 한장만 올라와도 ‘좋아요’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개팔자 상팔자’가 됐다.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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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ㅇ 2018-02-18 15:45:48
~ㄹ런지 는 ~ㄹ는지 의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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