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공공의 추억
문복주(시인)
일요일, 공공의 추억
문복주(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8.02.1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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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주시인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 아, 비유티플 썬데이. 이런 날은 우선 아침에 무조건 일어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아이들이 들어와 “아빠, 엄마가 일어나래. 세수하고 밥 먹으래.” 해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아침 10시 가능하면 12시 까지 버팅기면 더 좋다. 마누라 아내님이 급기야 들어와 이불을 젖히며 “당신 해가 하늘머리에 뜬지 언젠데 안 일어나는 거예욧! 지금 내게 반항하고 파업 시위하는 거예욧?” 하더라도 일어나면 안 된다. 왜냐. 지금 나는 행복을 맛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행복이 지속되도록 깨어나지 말고 오래오래 맛보아야 한다. 허둥지둥 일어나 직장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되는 오늘의 이 속박 없는 행복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시계불알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불려가고 눈만 뜨면 자석처럼 끌려가던 직장을 버리고 무한대로 잘 수 있는 오늘의 이 수면과 행복. 세상이 무너져도 상관없이 가장 자유롭게 풀어지고 헝클어져 이브자리에서 갖는 나만의 이 행복을 나는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만끽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일어날 수 없다. 잠을 깰 수 없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상이 무너지는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날들의 절망을 어디 한두 번 경험했으랴. 더할 수 없는 강압으로 어슬렁 일어나 모래 섞인 밥알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어제 늦게까지 마신 주독이 아직 풀어지지 않았다.

“내가 못살아. 허구 헌 날 밤 늦게까지 술 먹고 들어오고 그나마 가족과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일요일 날은 일어나지도 않고. 또 조금 있으면 약속이다, 골프다, 등산이다, 낚시다 무슨 핑계 던 대고 나갈 테지요? 가정이 심심풀이예요? 가장이 뭐냐고요”

시작이다. 목사님 설교가 시작된 거다. 공자선생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거다. 소쿠리테스의 와이프님이 나타나신 거다. 이럴 땐 빨리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아이고, 참.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사랑하는 여보, 자, 자, 그 예쁜 입술 삐뚤어지니까 일절만 하시고 나 사우나 갔다 올게요. 나의 상속자야, 어디 있느뇨. 준비 하거라. 아빠랑 목욕이나 하러 산으로 갈까나, 바다로 갈까나” 나도 가정을 가지고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다는 보통사람의 행복을 누구에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여자는 이 야릿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놈이 조금 크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같이 목욕하러 가던 생활이 끊어 졌지만 행복했던 날들의 한 날, 공공의 추억이 지나간다.

 

문복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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