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8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89)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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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말이라꼬 허투루 흘려버리지 말고 내 말 명심하고 살아라. 아깝다, 그 대단한 여자 능력을 엇길로 나가서 무용지물로 썩히는 겉똑똑이 짓은 그만하고…….”

현태어머니의 말은 곧 자신에게 등을 돌린 양지에 대한 현태의 원망에 찬 경고처럼 들렸다. ‘그래 나도 안다. 나는 ‘겉똑똑이’다. 양지는 한숨을 쉬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토록 경원했던 어머니의 행적을 모질고 독하게 다짐했던 대로 뛰어넘지도 못하면서 세월만 흘려보냈을 뿐이다. 뛰어넘겠다는 의지로 부릅떴던 시선만 혼란스러운 가운데 내 속에 존재해 있는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의식으로 인해 온갖 편견과 시행착오만 저질렀다. 과학이나 지식이 다할 수 없는 생의 오류를 확인하는 데만도 여러 번의 환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 그나마 얻어먹은 나이 값이나 될까. 실제로 현실에서는 퇴보했고 좌절, 비난의 눈초리를 의식에서 벗어던지지 못하고 산다.’

무심한 눈길로 스쳐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양지는 무언가 자신을 꽉 채우고 있는 넉넉함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이 현태의 아들 완이를 품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한 번 보육원 설립에 대한 절실함이 되새겨졌다. 현태 어머니가 평생 해왔던 접붙이는 일처럼 장차 어떤 큰 나무가 될지 모를 어린 아이들이 모국에서 불용 처분되는 묘목처럼 외국으로 보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연이도 완이도 용남의 아이들이나 고종오빠의 손자까지 입양아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문득 얼마 전에 세 자매가 같이 보았던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최근 어느 해외 입양인이 부모를 찾아 헤매다 실망하고 지친 인생을 자살로 마감한 사건이었다. 삶의 뿌리를 빼앗긴 해외 입양인들의 비참한 상황을 보면 하루 속히 해결책이 나와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여름철 매미소리처럼 한 순간 끓어오르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시부저기 가라앉았다. 사람이 사람을 낳았지만 그들을 제대로 양육할 능력이 없는 문제로 인해 안타까운 문제가 입양아들이 살고 있는 세상 곳곳에서 발생한다. 정착해서 사회적인 성공까지 손에 쥔 이들이 혹 없지는 않지만 많은 입양인들의 정체부정적인 정서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복잡다단한 인류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양지는 귀남언니의 경우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입장이라 입양아에 대한 문제만이라도 심각하게 해결해야 될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입양인은 피맺힌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낳았으면 거지가 되더라도 나는 같이 살면서 키웠을 거다.”

그러나 귀남과 다른 호남의 주장도 있었다.

“전부터 입양은 늘 있었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거다. 여러 이유로 다른 사람이 아기를 키우도록 하는 것은 어디서나 있었던 자연스러운 일이거든. 제 자식은 꼭 제 부모가 길러야한다는 편협한 주관도 현대사회에서는 개선되어야할 문제라고 나는 생각해.”

“그래서 그 동안 니 반응이 그랬던 걸 인제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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