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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25일 美 푸에블로함 나포 사건
박은정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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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3  09: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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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청와대 기습 미수가건이 있은지 불과 이틀뒤인 1월 23일 원산 앞 해상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미 해군 정보수집 보조함 푸에블로함을 나포하는 초대형 사건을 일으킨다.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함은 일본에서 출항해 원산 앞바다 공해상에서 대북 감청 작전중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고 나포됐다.

 교전 중 1명이 사망하고 82명이 간첩혐의로 감금됐다가 1969년 2월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그러나 푸에블로함은 북한의 미국에 대한 승리의 상징으로 아직도 북한에 남아있다. 사건이 일어난지 31년이 지난 1999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대동강에 전시되어 있던 반미 교육용으로 활용되고 있던 푸에블로함은 2013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있는 보통강구역으로 옮겨 전시중이다.

 이 사건은 미 해군 106년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경남일보 1월 25일자 1면에는 푸에블로함 나포사건을 계기로 해군 전 함정에 비상경비령이 내려지고 전투함들을 해안으로 불러들였다는 기사가 톱기사로 올라와 있다.

 제호아래 2단 기사에는 강릉에서 서울로 오던 열차승객들이 밤늦게 도착, 통행금지로 인해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귀가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또 1면의 기사 대부분이 푸에블로함 나포에 따른 미군의 대응방안이나 우리정부와 미 행정부와의 긴밀한 협조에 관한 기사들로 당시의 긴박함을 전하고 있다.

 북한은 11월에 다시 한번 울진 삼척지역에 간첩단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1968년 한반도는 북한의 각종 무력도발로 인해 평화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세계정세와는 반대로 긴장이 계속 고조되던 해였다. 그로 인해 각급 학교들에서는 반공교육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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