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9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91)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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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사업이 제대로 잘 되면서 지출될 일 없이 적립 된 돈이지만 결코 넉넉한 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돈으로만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으니 크게 걱정도 되지 않았다. 해야 될 일을 미루고 어물쩍하다 뒤늦게야 놓친 기회를 후회하는 일은 이제 없어야한다. 나이가 깨우쳐주는 대로 인생이 결국 어떠하며 또 어떠할 수 있는가를 목격했고 아울러 자신의 장래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양지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뻗쳐오른 주상절리 같은 힘으로 자신을 격려했다.

‘이제부터 내가 세운 일생일대의 목표를 위해 나는 나를 바칠 것이다! 낳아서 기른 아이도 없고 뚜렷하게 내세울 대외적인 결과도 없이 저 하나도 건사 못한 노처녀로 그저 무의미하고 초라하게 생을 흘려보내는 것은 나 최강양지의 망가진 자존심이고 수치다. 그럴 수는 없다. 나를 키워주고 나를 지탱하게 해준 자의식대로 나는 나답게 살아야한다. 강 사장에게도 장담했듯이 말이다.’

목장으로 돌아 온 양지는 부지런히 일복을 챙겨 입고 일터로 나갔다. 자금이 필요한 만큼 사업도 잘 풀려야한다. 비록 적은 돈이라도 월급을 알뜰하게 모으다보면 실팍한 기초자금으로 연결 될 것이다. 양지가 막 장갑을 끼는데 어지간히 기다렸던 기색을 감추지 않고 어디선가 귀남이 달려오더니 숨 돌릴 틈도 없이 준비했던 말들을 쏟아놓았다.

“너 집에 없는 것 보고 오빠도 호남이도 당장 거기 갔지 하더라. 현태 엄니 만나러 간 거 다 알더라니까. 네 기분 전환도 시킬 겸 우리 셋이 만나기로 했다. 밥도 같이 먹고 저네 노래방에서 노래도 하고. 호남이 그게 어쩐 일인지 나보고는 ‘고향이 그리워도’ 그 노래하라더라.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귀남의 들뜬 음성에는 양지가 없는 사이에 동생 호남과 직접 주고받았던 대화에 대한 자부심이 사뭇 자랑스럽게 배어있다. 병원에서 도망간 낭패스러운 행동으로 가책을 느끼고 있던 참에 동생 호남과 맞바로 주고받은 대화여서 앙금도 많이 해소된 모양이다.

양지는 부지런히 일손을 놀린다. 익숙하지 않은 사료배합 기술 때문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을까하여 오빠가 꼼꼼하게 정리해 준 노트를 자주 들여다본다. 익숙한 목부의 도움을 받지만 자식의 밥을 짓는 어머니 마음으로 수백 마리 소에게 먹일 사료를 만드는 손길은 절로 진지해진다.

이런 보람으로 양지가 보내는 나날 중에도 아는 사람이 많은 고향이라서 그녀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친구들의 소식도 자주 날아들었다.

“언니 친구 정자 안 있나. 그 언니하고는 연락하고 지내나?”

모처럼 차나 한잔 하자며 마주 앉았던 호남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아니, 말은 자주 보자고 했지만 저도 나도 바쁘니까. 와 갑자기 정자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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