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허숙영(수필가)
2월
허숙영(수필가)
  • 경남일보
  • 승인 2018.02.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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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숙영

2월은 바람의 달이다. 꽃샘추위에 소뿔 오그라든다는 말이 있다. 바람 속에 칼끝을 숨긴 듯 매섭다. 이런 때는 옷깃을 여미고 차분히 자신을 정돈해야 한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느라 떠들썩했던 시간을 자숙하고 새봄을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마련한 달이다.

2월은 무녀리처럼 조금 덜 떨어진 모습이다. 꽉 채워 넘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어리숙하고 덜 여문 모습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안타깝고 측은지심이 생긴다. 신록의 달인 오월이나 첫 계절을 알리며 화들짝 피어나는 3월을 칭송한 이는 많아도 꽁무니 거두며 황급히 달아나려는 2월에 관심 갖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꽁꽁 언 땅 깊숙이 묻어두었던 무를 꺼내니 꽃인 듯 샛노란 떡잎 몇 장이 2월의 찬바람 속에 바르르 떤다. 꽃이 되지도 못하고 싱그러운 푸른 잎으로 채 자라기도 전에 스러지는 2월의 모습이다. 2월은 졸업의 달이다. 긴 겨울의 끝이고 학업의 한 단계를 매듭짓는 달이다. 졸업이 영원히 끝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다른 방향의 문을 여는 것이다. 다음단계로의 도약을 위해 잠시 무릎 구부린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는 어려움을 딛고 힘차게 비상할 도움닫기 직전의 숨고르기를 하는 것이다. 베란다에서 겨울을 난 마늘은 속에다 뾰족한 새순을 숨기고 있었다. 2월처럼 싹 틔울 준비를 막 끝낸 것이다. 2월은 침묵의 달이다. 겨울 끝이라고는 하나 12월과 1월은 얼마나 분주했던가, 봄을 맞는 3월은 또 얼마나 부산을 떨어야 하는가. 2월이 없다면 주변을 둘러싼 계절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갈 것이다. 성급하게 부풀어 오르려는 목련의 꽃눈을 다독여 잠재우고 우쭐 우쭐 일어서려는 마음 속 파도도 잠재워 차분히 성찰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2월은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달이다. 우리의 최대 명절인 설이 2월에 들어 있어 다행이다. 따뜻하게 불 지핀 방에 흩어져 있던 형제들이 어빡자빡 드러눕거나 앉아서 체온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시간이다. 설레는 입학식을 준비하기 위해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나들이 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2월은 첫새벽이다. 아직은 어둠을 품고 있지만 곧 환한 봄이 당도할 것이다. 하루, 한해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꿈이 있다. 계획이 있고 설렘이 있다. 옛 사람들처럼 정화수 떠놓고 괜스레 모두의 안녕을 빌고 싶어진다. 새 출발을 하는 이들에게 2월의 꽃 프리지아를 한아름 안기며 응원해 주고 싶다. 뜨끈한 방안에 드러누워 책 읽기도 좋으니 이만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달도 없지 싶다.

허숙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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