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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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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7  21: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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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언니가 수필가로 당선됐다꼬 어제 그 형부가 우리 황금에서 거하게 축하 턱을 쐈다. 저녁을 먹고 이차로 왔다는데 친정 식구들하고 시숙이나 동서들까지 한 부대가 들이닥쳐서 시끌벅적했어.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첨 알았어.”

“정자가 언제 문학을 했나?”

양지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덜렁 도움닫기를 한 정자 때문에 알짜와 껍질로 선연히 분리당하는 느낌이 왔던 것이다.

“자기 말로 여가 선용차원으로 문화쎈타에서 글쓰기 강좌를 들었는데 자기 엄마와 사이가 나빠진 것과 시대 인식이 다른 이야기를 글로 썼더란다.”

“그래? 자기 엄마랑 지독하게 못 지내는 건 나도 아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을 상 받을 정도로 그럴싸하게 썼을까. 살림하고 남편 뒷바라지도 하며 아이들 키우는 것도 힘들 텐데 언제 그런 일을 해냈을꼬.”

“참 언니도, 살림살이는 다 뻔한 건데 시간이야 내면 되지. 취미생활하고 계모임 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면 맨 여자들뿐이라서 앉을 자리가 없다고 남자들은 욕하더라만 난 너무 기분 좋더라. 요새 여자들 자기 개발 무섭게 한다. 우리 가게에 오는 여자들도 낮에는 뭐 하는지 모르지? 수영하고 요가하고 컴퓨터도 배우고, 또 기타나 아코디언 피아노 같은 것도 배운대. 저네 친구들 이야기도 하는데 서예 학원 꽃꽂이학원 칠보공예니 뭐니 안하는 게 없이 열심히 살아. 먹고 사는 일이 조금 풀리니까 사람들 생활이 얼마나 여유로워 지는지 실감이 나.”

양지는 낮은 한숨을 뱉어냈다.

“여가 선용, 취미생활 참 좋지……. 하긴 오빠도 피리 배우러 광주에 있는 명인을 찾아간다더라.”

“오빠가? 자기 아버지가 우리 고모 꼬실 때처럼 또 누구 꼬실라꼬 그라나?”

“얘도 무슨 그런 소릴하노. 오빠는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인 거 잘 알면서. 허튼말이 소문으로 퍼지면 소드래 난다.”

“농담도 몬하나.”

두 자매는 모처럼 하하 웃었다.

양지는 오빠의 생일 날 오빠가 연주하는 피리소리를 들었다. 아직 완숙한 득음의 경지는 아니지만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듯 그 소리는 듣는 양지의 가슴까지 애절하게 녹여서 눈물 글썽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양지는 고종오빠가 피리를 배우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걸 안다. 물론 선친의 유품에 대한 애틋함도 포함되었지만 오빠는 그날 멋진 가락의 피리 연주를 마친 뒤 당신 가문의 내력과 이 모임에 기울이는 열정을 발표할 것이라 했다. 그날이란 어언 준비단계를 마친 ‘형평운동선양회’의 개회식이다. 농민항쟁이나 형평운동을 진주정신으로 일깨우고 드높여서 진주가 거듭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힘을 쏟으려는 오빠, 백정의 후손 장현동. 이번에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보다 짓밟히며 살아 온 하층민들을 위해 봉사 희생했던 양반 집안의 선지자들 인명도 조사해 놓은 대로 자랑스럽게 실명을 밝혀서 현창할 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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