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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칼럼]1592년 진주성 상공에 비차 날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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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6  16: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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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를 나오자 왼쪽에 높게 세운 장대가 있다. 그 끝에 끈의 중간을 고정시키고, 늘어진 두 가닥에 막대를 매어 흰 천을 걸쳤는데 길게 늘어져 있다. 바람이 불자 아래부터 들려 올라가더니 팽팽해지고 수(帥)자가 나타나 장수기 임을 알게 한다. 일정하게 바람이 불어 수평이 되면 따오기도 날아와 앉을 수 있겠구나.

공기는 입자로 되고 주변과 같은 밀도를 유지하려는 성질에 의해 촘촘한 부분에서 듬성한 부분으로 입자를 이동시키는 힘이 생긴다. 직사각형 용지의 세로 귀를 두 손으로 수평 되게 잡으면 나머지는 아래로 쳐지고, 바람을 종이 윗면으로 보내면 공기가 밀려 상대적으로 아래쪽이 촘촘하게 되어 종이는 들리게 된다. 새가 바람 부는 공중에 날개를 펴고 정지할 수 있음은 날개 위쪽으로 공기 흐름을 빠르게 하는 구조로 양력을 얻기 때문이다.

이륙하려면 물체에서 땅으로 힘을 가하여 반작용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같은 원리를 잘 아는 사람은 화약을 다루는 사람일 것이다. 왜냐하면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이 나아가고 포신은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1592년 10월 5일, 조선군 3800명과 왜군 2만명이 진주성에서 전투가 시작된다. 진주대첩이다. 승리의 요인으로 민관군의 단결된 전투력, 비차의 활약을 꼽을 수 있겠다. 정평구는 전라우수사 이억기에 의해 진주병영 별군관으로 발령받아 김시민의 휘하에서 화약을 다루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새 날개를 관찰하여 양력과 추진력, 대포에서 반작용을 터득하여 30리를 나는 비차(飛車)를 제작, 공중 정찰 등을 하자 적은 신 병기출현에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다.

조선 고전문헌 뿐만 아니라, 일본 역사서인 왜사기에도 전라도 김제에 사는 정평구가 비차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이를 사용하였다고 기록되고, 최남선은 정평구를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으로 선정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실물로 볼 수 있는 비차가 남아 있지 않고, 설계도나 원리 등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 김동민은 〈비차〉라는 소설을 경남일보에 연재하여 재현의 가능성을 소개하였고, KBS는 역사스페셜에서 건국대 비차연구팀(윤광준 교수)이 1590년대에 활용 가능한 재료와 수레, 연 등을 사용해 비차를 제작하여 고도 20m에서 74m 비행에 성공했다고 보도하였다.

바람이 불어 장수기에서 멋진 필체의 帥자를 볼 수 있다. 우리 역사 속에 세상을 놀라게 할 비차가 있었다. 관심과 역사적 사명감이 모아지면, 어딘가 잠자고 있을 비차 설계도를 찾아 햇볕으로 나오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비행기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라이트 형제가 띄웠다는 플라이어호 보다 311년 앞서 진주성 하늘에 비행기가 날았다는 것이다. 가슴 설레는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 본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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