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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아는 것
신용욱(경남과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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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8  16: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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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욱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라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아는 것’이라고 했다.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위정은 ‘위정이덕’의 줄임말로 ‘덕으로 감화시켜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논어에서 배움에 관한 이야기는 ‘학이’편에서 다루는 게 맞을 텐데 왜 정치를 논하는 위정편에서 다루었을까? 평소에 이 점이 궁금했었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지위가 높아지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려워서 공자는 정치를 논하는 위정편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었을까?

학식이 높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모양이다. 노자도 공자의 위의 말과 유사한 맥락의 말을 남겼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즉, 자신의 현재 수준을 정확하게 깨닫고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알기위해 책을 읽어 지식을 얻고, 집중적으로 연마하여 자기의 한계에서 벗어나 성공에 이르게 되는 그러한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또 한편 관자에 ‘남에게 교만한 자 가운데 큰 선비가 없다. 교만한 사람은 자만하기 때문이다. 자만하는 사람은 공허하다. 자만하고 공허한 사람은 상대에게 제어된다’ 즉,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공허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자부심은 두 종류가 있는데 그중 자존감을 높이는 진정한 자부심이 아닌 자만과 연결되는 오만한 자부심은 부정적 형태의 자부심으로 자존감이 낮고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에 취약하다. 몰라도 아는 척하는 교만한 태도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공허함을 드러내 보이지 않기 위해서 더더욱 가면을 쓸 수밖에 없고 그러다가 허상이 드러나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마련이다. 성경의 잠언에서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진정한 아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정치이야기와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었다. 생각해보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자신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아는 것’에 대한 담론을, 백성을 덕으로 감화시켜 정치를 하는 도를 가르치는 ‘위정’편에 실은 것은 정치를 함에 있어서 가장 큰 덕목으로 정직이라는 점을 저자는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용욱(경남과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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