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모럴해저드와 ‘주홍글씨’
변옥윤(객원논설위원 수필가)
[경일시론]모럴해저드와 ‘주홍글씨’
변옥윤(객원논설위원 수필가)
  • 경남일보
  • 승인 2018.03.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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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철학자 순자는 사람의 근본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창하고 교육의 힘으로 악을 순화시킬 수 있다고 설파했다. 성서에서도 고대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성적타락으로 여호와의 심판을 받았다. 모럴해저드는 양의 동서나 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가 됐다. 여호와가 선택한 나라 이스라엘의 다윗왕은 그의 충직한 장수 우리아의 아내를 탐했고 종국에는 우리아를 사지에 보내 죽게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준엄한 메시지를 받고 비로소 죄를 뉘우치고 눈물로 회개한다. 후세에 사람들은 다윗을 ‘죄인의 대표이자 회개한 자의 대표’로 널리 회자하고 있다.

17세기 미국사회에도 간통죄에 대한 다스림은 엄격했다. 청교도정신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에 당시의 사회상이 잘 그려지고 있다. 소설속 여주인공 헤스터는 사회적 명망가인 딤스데일 목사와의 간통으로 일생 가슴에 ‘간통’이라는 단어의 첫 글자인 ‘A‘를 주홍글씨로 새기고 살았지만 끝내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홀로 일생을 봉사하며 주홍글씨의 굴레 속에서 산 반면 딤스데일은 명예와 성직자라는 신분에 얽메여 커밍아웃을 못하다가 죽음을 앞두고 그의 가슴에 새긴 ’A’라는 주홍글씨를 헤스터에게 보여주고 숨을 거둔다는 내용이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me too운동과 오버랩되면서 우리사회의 모럴 해저드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조민기의 자살을 두고 결국은 가슴속 깊이 새겨진 주홍글씨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하고 지금 우리사회가 그 중심에 서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간의 존경을 받고 있는 사회적 지도자들의 타락상은 많은 사람들을 맨붕상태로 만들어 그들의 희생(?))은 필연이다. 희생이 아니라 다윗왕처럼 스스로 죄를 회개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모럴해저드를 ‘도덕적 해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위험’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확하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따라서 인간의 내재된 도덕적 위험을 막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갖추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순자의 성악설과 일맥상통하고 지금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현상에도 맞는 말이다.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여 스스로 진퇴를 결정하고 다윗의 속죄가 곧 자신의 속죄가 되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기득권자. 가진자, 권력자, 교육자, 성직자들의 위치가 너무 높아 감당이 불가능해 제도로 아예 그런 유혹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성범죄는 은밀하고 당사자가 고발하지 않는 한 밝혀지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어 보다 가혹한 사회적 규범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세상은 냉혹해 죽음직전 자신의 가슴에 새긴 주홍글씨를 내보인 딤스데일 목사보다는 일생을 주홍글씨를 안고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온 헤스터를 원한다.

우리사회가 일찌기 지금만큼 모럴헤저드에 집착한 적은 없다. 특히 성적차별과 그로인한 범죄은 me too와 with you캠페인으로 갈수록 탄력을 받고 있다. 마침내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 캠페인은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아직도 약자의 입장이어서 감히 엄두를 못내고 어두움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많은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확장되고 탄력을 받아야 한다. 우리사회가 변화하고 양성평등이 자리잡을 천재일우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위험은 제도로 강제하는 장치와 다윗왕의 회개와 같은 대대적인 커밍아웃캠페인이 필요하다. 존경을 받는 이들이 가장 타락한 반면 무지랭이들이 가장 높은 도덕성을 지녔다는 비아냥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될 때까지 캠페인은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억압받고 피해입은 자들에 대한 우리사회가 보내는 최소한의 보답이다. 이는 법보다 우선하는 사회적 흐름이다. 아직도 말하지 않은 헤스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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