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가정방문
이덕대(수필가)
선생님의 가정방문
이덕대(수필가)
  • 경남일보
  • 승인 2018.03.1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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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봄이지만 아직 춥다. 잿빛 구름 아래로 흙바람이 분다. 오늘도 중공(中共)의 원자폭탄 실험이 있는 날이라고 장독대 항아리 뚜껑 닫는 것은 물론 담장이나 마당에 널어놓은 나물이나 먹거리는 전부 거두어들이라는 선생님 말씀이 있었다. 초등학교 사회책에 실려 있는 나가사키 원자폭탄 폭발 그림은 커다란 버섯구름이다. 그 버섯구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낙진이라는데 몸에 닿거나 입속으로 들어가면 방사선으로 인한 병이 생긴단다.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머리가 다 빠지는 무서운 병에 걸린다고 하니 조심해야겠다.

오늘은 금요일, 원자폭탄의 무서움은 금방 잊히고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 가정방문 말씀만 하굣길 내내 머리를 맴돈다. 무섭다는 수소폭탄 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다. 주말을 통해 가정방문을 하신단다. 학기 초 생활환경란에 적었던 논밭이 얼마이며 라디오나 재봉틀을 가지고 있는지, 소와 닭은 몇 마리인지 등을 면사무소에 신고하듯이 빠짐없이 적어냈다.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 그냥 없다고 하기가 부끄러워 옆자리 아이를 힐끔거리며 보지도 않는 신문도 본다하고 기르지도 않는 돼지도 두 마리나 있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시면...,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은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니었다. 세상과 소통 창구이자 도덕과 사회규범의 잣대였고, 다가올 미래의 표준이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함은 물론 사고와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다. 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있는 날은 집안 청소도 그렇지만 대접할 음식 준비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마을 구멍가게에서 막걸리라도 사다놓고 닭도 잡아 대접했다. 집을 방문하는 것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오신다는 것으로 뿌듯하기도 했다.

학기 초가 되니 갑자기 옛날 가정방문이 생각난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을 이용하여 일일이 학생들 집을 찾아가 교육 환경을 살피고 학부형들의 교육 협조를 구하던 그 수고로움이 참으로 컸을 것이다. 선생님이 다녀가시고 나면 며칠 동안은 그 이야기가 마을에 떠다녔다. 지금은 가정방문이 조련치도 않고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법적 규제와 필요성이 옛날 같지 않아 그렇겠지만 시대가 변했다. 가난한 그 때를 견디고 이겨내며 세계 몇 번째의 경제부국이 된 근저에는 오직 참교육과 제자 사랑 일념으로 미래를 준비해준 선생님들의 희생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새로운 날들을 준비하는 3월이 되니 살갑게 다가와 등을 토닥이시고 세상의 문을 열어 주시던 선생님의 옛 가정방문이 새삼 그립다.

이덕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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