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녹(綠, rust)
김태화(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산학협력처장 공학박사)
[객원칼럼]녹(綠, rust)
김태화(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산학협력처장 공학박사)
  • 경남일보
  • 승인 2018.03.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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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나 문인들은 쇳덩이에 붉은 녹이 슬게 되면 여러 가지 다양한 은유적 표현을 빌려 그 현상을 표현하곤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붉은 색’이 상징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주로 위험하거나 좋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하루가 지날 무렵의 석양이 지닌 색과 가을에 지는 낙엽의 색에 비유하여 녹이 낀 금속은 수명이 다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표현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옳은 표현일까? 공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녹이란, 철(Fe)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Fe2O3(Ferric Oxide)라는 붉은색의 물질로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부식’ 혹은 ‘산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외부에서 힘을 받는 기계적 재료 혹은 구조재가 아닐 경우 산소와 결합된 부분을 제거하게 되면 충분히 재사용 가능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금속은 자연 상태에서 화합물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을 사람들이 채집하여 제련 혹은 정련 과정을 거친 다음 순도 높은 금속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대 이공학 발전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이 있다. 무생물인 금속 역시 자기가 원래 지녔던 모습인 광석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광석이라고 불리는 화합물속에서 다른 물질과 결합되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녹이 슨다는 것은 조금은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금속의 입장에선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동네 골목길 어귀 페인트가 벗겨진 자전거에 나타난 붉은 색의 녹‘은 철이라는 금속이 물과 공기가 존재하는 환경 하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 외부와 교감(?)한 결과로 화학적 결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속 부식 반응은 금속과 환경과의 조합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진공 속에 있는 철은 절대 녹이 슬지 않는다.(단, 만약 녹이 슬어서 필자에게 화를 내는 독자가 계실지 모르겠으니 정확하게 환경조건과 진공조건을 갖추었을 때) 또한 내식성 금속으로 분류되는 백금, 금, 은, 구리, 스테인레스강 등은 내부 조직이 치밀하여 표면에 ‘부동태 피막(passivation film)’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금속들은 마치 부식이 되지 않는 것으로 오인 받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공기나 수분 등이 침투할 수 없도록 할 뿐만 아니라 금속이 지닌 본 성질을 인위적으로 억제시킬 수 있다면 부식 즉, 녹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간혹 서랍이나 장속에 깊이깊이 간직해두었던 귀금속을 모처럼 꺼내 보았더니 녹이 발생했다고 상심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지니고 있는 귀금속의 순도가 낮아서 불순 물질로 인한 녹 발생이 나타난 경우도 있겠지만 귀금속도 금속의 한 종류이다. 따라서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에서 녹 발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무생물인 금속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반응을 보이는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 녹은 수명이 다한 것이 아니라 무심하게 방치하고 내버려 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무언의 언어인 것이다.
 
김태화(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산학협력처장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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