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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진정한 벗
정삼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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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8  18: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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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희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이웃, 모르는 이웃으로부터 은덕을 입는다. 우리가 이렇게 무사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유형 무형의 도움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처럼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주고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남에게 베푸는 행위를 불교에서는 보시(布施)라고 부르는데, 이 보시 행위가 불균형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남으로부터 받는 은덕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모르고 자신이 베푼 행위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아들이 아버지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다고 자랑을 하여 아버지는 아들의 우정을 시험해 보려고 아들에게 돼지를 잡아 지게에 메게 하고 아들의 친구 집을 방문토록 했다. 아들이 그동안 사귀었던 친구들을 방문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보게, 내가 지금 사람을 죽였네, 그래서 지금 그 시체를 지게에 메고 찾아왔네. 나를 좀 숨겨주게나."

아들은 밤이 지샐 때까지 많은 친구집을 방문했지만, 단 한군데에서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 돼지를 자신이 멘 뒤, 나를 따라오너라. 아버지는 성큼성큼 앞장서서 한 집을 방문하였다. 문을 두드리자 곧 안에서 한사람이 나왔다.

"여보게, 내가 사람을 죽였네. 그래서 지금 그 시체를 지게에 메고 왔네. 나와 함께 이 시체를 묻고 나를 좀 숨겨줄 수 있겠나?" 이에 그 아버지의 친구는 두 말없이 아버지를 맞아들였다.

그제야 아버지는 지게에 멨던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면서 말했다.

"네가 평생을 통해 단 한사람의 친구를 사귈 수 있다면 네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하시면서 아들을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맺으라는 이 교훈적인 우화가 요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죽은 돼지를 메고 그동안 사귀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집을 방문한다면 나를 맞아들여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인가?

오늘날 같으면 공범으로 몰린다고 더 문전박대 당할 것이 분명한 세상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결백증 환자처럼 의리가 깨어져 불신하게 된다. 그래서 부질없다, 부질없는 일이다, 하고 이를 부정하는 마음이 먼저 자리 잡게 된다.

의리 있는 단 하나의 친구도 없이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쓸쓸하고 고독한 일인가. 사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홀로 떠나가는지 정갈한 봄은 문 밖에 서 있건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여윈 바람만 속삭일 뿐이다.

정삼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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