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산들이'
문복주(시인)
'철학자 산들이'
문복주(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8.03.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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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주

아파트 엘리베이터 타는 곳에 A4 용지 광고가 붙어 있다. 가족을 찾습니다. ‘사례금 200만원’. 으잉, 200만원? 눈이 커다랗게 떠진다. 이름 예삐, 견종 푸들, 산책하다 슈퍼 앞에서 사라짐. 가족이니 제발 찾아주세요. 간절한 호소가 적혀 있다. 머리에 멋진 리본과 금목걸이를 하고 스웨터까지 걸친 예쁜 개 한 마리가 나를 동그라니 쳐다본다. 개 세상에서도 금수저 집안은 다르구나. 개를 찾아나서 볼까? 일당 200만원이라면 당장 발 벗고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 큰 개에게 허벅지를 물렸던 나는 지금도 개 앞에 서면 몸이 굳어진다. 산골에 살게 되니 주위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개 한 마리 길러야 한다고 했다. 시골 마당에 순진한 순둥이가 뛰놀고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좋아 개를 키워보기로 했다. 나의 시집 ‘철학자 산들이’에 나오는 충견 산들이와 바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산들 바람아 불어라 하면 그들은 쏜살같이 나타났다. 이놈들이 커가며 나의 충견이 되어 갈 무렵 산에서 방목하는 이웃집 흑염소를 몇 마리씩 죽이고 돌아오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변상하고 이웃집과 다투고 매일 묶어두었지만 틈만 나면 사냥을 반복했다. 생명을 자유롭게 키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할 수 없이 얻어온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요즘 반려견에 대한 규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웃에 피해가 간다면 이 또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큰 개에 물렸던 어렸을 적 트라우마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몸이 굳어지는 것을 보면 문제는 문제다. 동물을 키우는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개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철학자 산들이가 그립다.

이 놈은 잘못 태어나 개가 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자신이 개를 선택한 것이다 인간이 사슬로 묶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을 거부하고 개가 되었다 먼 산을 보며 사유하는 눈 목줄을 매든 풀든 상관치 않는 자유로움 밥을 주어도 며칠 굶겨도 절대로 비굴하지 않는 의연함 흠씬 두들겨 패면 팰수록 내가 측은하다는 듯 한참을 쳐다보는 때로 인간사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잔디밭을 걷는다 눈 내리는 깊은 산골 하얀 산천을 바라보며 의젓이 앉아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6번 비극적을 들으며 꼬리를 간간히 흔들고 있는 저 놈을 보라 철학자인가 삶을 거부하는 똥개인가.

문복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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