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를 인 집
허숙영 (수필가)
바퀴를 인 집
허숙영 (수필가)
  • 경남일보
  • 승인 2018.03.2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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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항선 철길을 따라 걷다보면 바퀴달린 집이 내려다보인다. 아니 타이어를 머리에 이고 있는 집이 있다. 썩은 이와 새 이를 맞바꾸자며 던져 올리던 지붕, 바람 따라 홀씨라도 날아들면 군말 없이 길러내던 기와지붕이다.

기와집이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용머리에서 느껴지던 위엄에 압도당해 스스로 몸을 낮추고 옷깃을 여미지 않았던가. 그런 지붕에 천막을 덮고 타이어를 하나씩 얹어 꿰맬 때마다 그 아래 사는 사람들 심장은 시나브로 바스러졌을 것이다. 오죽이나 삶이 팍팍했으면 바퀴를 머리에 얹고 하천과 기찻길이 앞뒤를 가로막은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어쩌면 한창 뛰어놀 서너 살 백이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 집의 내력이 궁금해진다.

오래전에 각인된 비슷한 장면 하나가 스쳐간다. 우리가 처음 장만한 집이 S여고 담벼락 아래 붙은 낡은 기와집이었다. 마당이 넓고 오종종한 꽃들이 가득한 화단이 마음에 들어 빚을 내 덜컥 사버린 집이었다. 이사를 하고서야 하자가 나타났다. 여름장마가 시작되자 벽을 타고 빗물이 방으로 스며들고 넓어서 좋았던 시멘트 마당은 이끼로 뒤덮였다. 한 장씩 켜켜로 얹은 기와의 어느 틈바구니에서 빗물이 새는지 몰라 지붕을 덮을 만큼 넓은 천막을 눌러 덮었다. 새는 곳을 알 길 없어 그대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겨울에는 추위에 떨어야 했고 수돗물은 얼기 일쑤였다.

뒤꼍을 돌아가면 숙이네가 살았다. 숙이 엄마는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의 학업을 위해 시골 살이를 끝내고 우리 집에 세를 들었다. 장마 때면 숙이네 부엌에는 빗물이 흥건히 고였지만 고쳐달란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나를 볼 때마다 그곳에 살게 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해 민망했다. 낮에는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휴일이면 시골에 가서 밭일을 하고 와서도 반찬을 만들어 꼭 나누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이갈이를 할 때는 실로 이를 뽑아 “까치야, 까치야, 헌 이 가져가고 새 이 다오” 하며 지붕 위에 던져 주던 푸근한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비새는 기와집의 허물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넓은 마당은 가치가 있었다. 그 마당에서 우리 아이들은 마음껏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동화를 크게 틀어놓고 장난감 말을 밀고 놀았으니 충분히 자유롭게 자란 셈이다. 아파트라면 엄두도 못 낼일 아닌가. 타이어를 얹은 지붕을 내려다보며 내 젊은 날의 따뜻했던 정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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