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성금 모으기 운동
‘방위성금’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1970~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단어이다. 매달 내던 방위성금과 겨울방학 즈음에 내던 불우이웃돕기성금 그리고 국군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품과 위문편지 등 지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단어들이다.
방위성금 자체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몰랐지만 막연히 방위성금이라고 하니 그 돈으로 소위 ‘탱크도 사고, 비행기도 사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담임선생님이 “내일은 방위성금 내는 날이니 성금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집에서 부모님께 말씀드려 주시는 대로 받아내곤 했다.
방위성금 모금운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1968년 2월 서울시교육위원회의 총학장 및 교육감 회의 때 대공 장비 개선을 위한 ‘반공성금’을 거두기로 의결했다는 기록이 그 시초로 보인다.(초등학생 10원, 중학생 20원, 고등학생 이상 30원, 교직원 100원 등)
처음 명칭인 ‘반공성금’에서 알 수 있듯이 방위성금 모금운동이 전 국민의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결정적 공헌자(?)는 다름 아닌 북한이었다.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의 무장간첩 사건과 강원도 무장공비 사건 등 북의 잦은 무도한 도발로 자연스레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하게 됐다.
이후 모 기업체 사장, 금융단에선 헬기 1대의 성금을 각각 헌납하기도 하며 전국교직원 및 학생들도 헬기 구입기금으로 전달했다.
이후 1973년부터는 모든 국민이 내야했다. 정부는 약 609억 원을 방위성금을 모아 F-4D전폭기 등을 구입했다. 하지만 성금이 제대로 쓰이기보다는 고위층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기업에 반강제적인 ‘준조세’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1988년 9월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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