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경일춘추
봄비 예찬
정삼희(시인)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01  21:13:5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정삼희

비가 내린다. 우산 위를 두드리는 봄비는 우산을 타고 흐른다. 또 다른 빗물은 우산에 맺혀서 떨어질 듯 젖어 있는 모습이다. 늘어진 가지 끝에 새파란 새순이 올라오고 왕성한 생명력이 나뭇가지 끝에서 무섭게 솟구쳐 올라 만개한 꽃들이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 가지 끝에 촉촉한 봄비가 막 울다 울음을 그친 아이 눈동자처럼 초롱 하다. 주말이면 1박2일 지리산 아래 감 농장에서 쉬고 온다. 한겨울 얼어붙었던 덕천강도 어느 새 완전히 풀려 천천히 물비늘을 반짝이며 흘러가고 있고 비에 젖은 자갈들은 윤이 나고 있다. 강 건너 맞은편에 드리운 버드나무며 자잘한 풀들도 머리를 풀고 부스스 기지개를 켠 채 한결 싱그럽게 땅위로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파릇파릇 돋아나 있다.

누구나 인간은 비가 오면 감성적이 되고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아 명상에 잠기곤 한다. 창밖으로 봄비에 젖은 능선을 바라보니 하늘과 맞닿아 지워진 산 그리메처럼 겹쳐서, 한 폭의 동양화를 미완성으로 그려놓고 마무리를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비가 오면 양철도단 위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좋아 작업실 겸 쓰는 차방에 자주 앉는다. 또닥또닥 떨어지는 빗소리와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쇠 소리를 내며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풍경소리가 파르르 떠는 운치는 가히 낭만적이다. 비오는 날은 뜨거운 방바닥이 좋다. 군불은 아니지만 전기 판넬로 따끈따끈 불어넣어 차 향기 가득한 방에서 필자가 만든 백초차를 다려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호사도 누린다. 비가 오면 뜨거운 방바닥에 허리를 깔고 누워서 한잠을 자고나면 온몸이 거짓말처럼 개운하다. 세상만사 힘들고 지칠 때 자신에게 보상하는 시간인 셈이다. 그래서 더 없이 행복하다. 몸살이 나면 온몸에 신호를 보내어 쉬어라고 하지만 쉬지 않을 때에는 결국 다운이 되어 누워 쉬게 하듯이. 때론 삶에 휴식도 중요한 것이다. 날씨도 햇볕이 쨍쨍한 날이 있는가하면, 흐린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고 비가 오는 날도 있다. 우주만물이 자연 속에서 순리대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영혼을 그리워하고 영혼은 끊임없이 육신을 찾아 떠도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세상의 먼지로 다시 되돌아갈 우리육신의 허망함이 몰려올 때나,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막걸리와 부침개가 생각난다. 전 굽는 소리가 따닥따닥 빗소리와 닮아서 동감이 가는 걸까. 오늘은 막걸리와 부침개 한상을 차려놓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로 하루를 마무리 해보면 어떨까.

 

정삼희(시인)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