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씨의 귀농인 편지 [1]평사리에서
조동진씨의 귀농인 편지 [1]평사리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18.03.22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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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행복한 제2의 고향
조동진 (지리산웰빙 귀농학원장)
귀농귀촌 알아야 할 88가지 저자

어젯밤 달빛이 흥건했던 마당에 아침햇살이 쌓인다. 음악을 켜고 찻물을 올린다. 평사리 들판으로 햇살이 번지며 악양의 아침이 밝아온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아침 명상을 하고 나니 아내가 일어난다. 식탁 위에는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며 고구마가 더운 김을 내며 식욕을 돋운다.

술에 취해 잤다가 겨우 일어나 물만 찍어 바르고 빈속으로 후다닥 출근하던 도시에서의 생활이 언뜻 떠오른다.

의자에 기대어 아내와 오늘 하루 일을 의논하며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 이 시간이 그렇게 고맙고 행복할 수가 없다. 이틀이 멀다하고 병원 문턱을 넘나들었던 아내도 이제는 건강을 되찾아 정원도 가꾸고 밭일도 돕는다.

아침이면 코피가 쏟아지고 어깨는 단단하게 뭉쳤던 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도시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끌려가듯 힘들었지만 지금은 가뿐하고도 즐거이 하루를 맞이한다.

싱그러운 아침햇살이, 푸르른 들판이, 향기로운 들꽃들이 반겨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새들처럼 노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걸어서 1분 거리인 나의 직장은 감나무 과수원이다. 일주일에 3일, 하루에 4시간을 넘기지 않는 일과 시간이다. 물론 비오고 바람 불면 당연히 임시 휴일이다. 그럴 때면 고을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며 술잔도 기울이고 차도 나눈다.

‘배우고 또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씀을 시골 와서 실감한다. 하동군에서 위탁 진행하는 취미반, 무료로 진행하는 농업인대학, 하동문화원, 면에서도 자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하여 입맛대로 골라서 배운다.

덕분에 막걸리 기울일 땐 판소리도 한소리 주워 넘기고 대금도 불고 장구도 친다. 농업인대학에서는 발효식품을 배워 식초도 만들고 술도 만든다.

이제 하동군 농산물가공센터까지 준공되면 내가 키운 농산물을 손쉽게 가공 판매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나는 숫자에 어둡고 문서 작성에 둔하기에 지원사업 혜택을 보지 못하는데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큰 액수의 보조금을 지원 받아 그럴듯한 가공시설도 갖춘다. 자기의 노력 여하에 따라 맘껏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국가 지원을 받은 적이 없는듯한데 시골 와서는 자기하기 나름으로 상당부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나도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 식초법인을 만들고 지원금을 받아 식초 공장을 설립했다.

자력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들을 이웃 농민들과 하동군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국가지원금 보다 농민들의 판매 능력이나 생산능력이 아직 미진하다.

따라서 좀 더 치밀한 준비를 하고 난 후 지원을 받아 일을 벌여야겠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동군 농산물가공센터는 소규모 농민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가공 아이디어만 만들 수 있다면 저렴한 농산물을 맘껏 사들여 가공비도 저렴하게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수익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농민들은 하우스 농사를 한다.

1000평 정도면 5000만원의 순이익이 발생한다 하니 짭짤하지 않을 수 없다. 1년에 8∼9개월 일하고 그 정도 수입이면 도시에서의 억대 연봉에 버금간다. 건강한 젊은 부부들은 하우스 딸기농사를 하여 자녀 교육과 노후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나처럼 일하는 게 싫으면 농산물 가공으로 가고 열심히 벌고 싶으면 하우스 농사와 가공을 하면 되기에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기회는 제공되는 셈이다. 그러하기에 하동 옥종에는 귀농인구가 줄을 잇고 화개나 악양은 귀촌 인구가 줄을 잇는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한 시간 거리인 경남 고성이지만 이미 고향은 옛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살고 있는 평사리가 고향처럼 따스하다. 길을 가다가 이웃을 만나면 따습게 웃어 주시고 팔던 물건을 하나라도 손에 쥐어주신다.

대문에는 누가 갖다 놓은 지도 모르는 산나물들이 종종 걸린다. 내가 뼈를 묻을 하동 악양 평사리. 이 모든 게 변함없이 지금처럼만 유지되면 여한이 없다.

시골 들어오기 전 걱정했던 텃세며 외로움 등은 기우에 불과했고 지금은 평생지기 친구와 제2의 고향을 만나 행복하기 그지없다. 하루하루가 즐거우니 내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다.

귀농인 조동진(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독자기고 조동진씨 농장작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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