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천하의 근심을 누구보다도 먼저 걱정하고 즐거움은 누구보다도 뒤에 즐거워한다는 구절처럼 맑은 덕으로 올바르게 살고자 한 사람들이다. 또한 지조와 청빈을 최우선 가치로 초야에 있다가도 나라가 위태로우면 앞장서는 선비정신은 역사를 관통하는 정신적 지주이자 오늘날에도 되새겨야 할 귀감이다.
함안군 칠원읍에 있는 무기연당(舞沂蓮塘)은 그런 선비정신에 관한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연못을 만든 주재성 선생은 분무원종공신에 올랐지만 벼슬을 세 번이나 사양하며 끝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선비의 표본이 됐다.
연못 곳곳에 이러한 정신이 스며있는데 우선 무기라는 이름이 그렇다. 논어 선진편에 공자가 제자에게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3명은 “제후”(諸侯)라고 답했지만 증점(曾點)은 “늦은 봄 기수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에 가서 바람 쐰 후 시를 읊으며 돌아오겠다”고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뜻이었다. 즉 무기라는 이름은 무우와 기수에서 온 말로 마을이 연못이름이 된 것이다. 연못의 풍욕루도 마찬가지다. 굴원은 초나라의 재상으로 제나라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강남에 유배되어 ‘어부사’를 남기는데 그중에 굴원이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을 털어서 쓰고 목욕한 사람은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자 어부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답하는 구절이 있다. 세상의 혼탁함에서 벗어나 깨끗함을 유지하겠다는 표명인데 바람에 몸을 씻는 다락뿐만 아니라 갓끈을 씻는 돌인 탁영석(濯纓石)에서도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다.
선생의 호는 국담(菊潭)인데 하환정중수기에 1717년 마당에 연못을 파고 고기를 길렀다고 했으니 무기연당의 다른 이름은 국담이다. 그 문에 영귀문(詠歸門)이란 현판이 있는데 시를 읊으며 돌아오는 문이니 증점의 바람을 실제 생활에서 이루고 살아간 선생은 얼마나 기뻤으랴.
선비정신을 대변하는 무기연당과 연못 위로 비스듬히 누운 채 바람에 몸을 맡긴 소나무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지 우리에게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조정래(함안군 환경위생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