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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의 박물관 편지[8]암스테르담 에르미타주 박물관(Hermitage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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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9  22: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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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켄호프(Keukenhof) 행사장 내부. 정원을 가득 메운 튤립과 함께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가 자리하고 있다.

 

바야흐로 네덜란드에도 튤립의 계절이 왔다.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치던 추운 겨울을 뚫고 드디어 봄이 오는가 싶더니 또 다시 기온이 떨어지기를 반복. 그러다가 마침내 찾아온 이곳의 봄은 한없이 따스하다.

지금 네덜란드는 어딜 가나 형형색색 튤립의 향연이다. 지천에 피어있는 튤립을 보면 추위에 움츠려있던 ‘나’의 내면까지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1년 내내 다양한 축제와 볼거리로 관광객을 맞는 암스테르담은 세상 모든 종류의 튤립을 만날 수 있는 큐켄호프(Keukenhof)의 개장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바쁘다.

북적이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땐 암스테르담의 동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암스텔 강 위로 지나다니는 유람선을 따라 걷다보면 암스테르담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네덜란드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같은 간판을 내건 박물관이라니, 이곳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 걸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사진제공=stpeterburg.com


암스테르담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박물관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1764년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at)의 수집품을 기초로해 세워진 곳으로 러시아 회화뿐만 아니라 소장범위가 전세계를 넘나드는데 특히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플랑드르 화가들의 걸작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로 이름나있다.
 

   
암스텔 강이 흐르는 암스테르담 에르미타주 박물관 전경. /사진제공=암스테르담 에르미타주
   
암스테르담 에르미타주 박물관 입구.


암스테르담 에르미타주는 2009년 6월 당시 네덜란드의 여왕이었던 베아트릭스(Queen Beatrix)와 러시아의 제 5대 대통령을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 네덜란드와 러시아가 문화적, 역사적으로 지속적인 교류를 약속한 증표로 네덜란드인들을 비롯해 암스테르담을 찾는 관광객들에게까지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연 2~3차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품을 대여해 전시를 개최하고 있으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을 중심으로 한 영구전시실을 함께 운영한다.

네덜란드는 17세기를 황금기(Golden Age)라 칭하며 모든 것이 풍족했던 그 시대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암스테르담이 유럽 경제의 중심을 장악하며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즐길 수 있는 예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당시 부유해진 북부 네덜란드에서는 그림을 사고 파는 일이 유행하기 시작 했고, 많은 화가 들이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그림을 그렸으며 새로운 화가들도 대거 등장했다. 그림은 성서화,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 장르화, 교회실내화 등으로 매우 다양했고, 이 시기 대부분의 화가들은 한 종류의 그림에만 집중했는데 이것은 곧 그림의 종류와 대표 화가를 연결 지을 수 있게 된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큰 특징이 되었다.

18세기가 되자 네덜란드 회화는 유럽 전역으로 그 인기가 확대되었다. 그림의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그 만큼 그림 시장도 확장되었다. 특히 러시아 귀족들은 네덜란드 회화에 짙은 관심을 보였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네덜란드 화가 작품의 수는 네덜란드를 제외한 전 세계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램브란트의 작품 또한 가장 많이 보유한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달 말까지 ‘Dutch Masters from the Hermitage’를 주제로 하는 전시를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본관 네덜란드회화전시실에 소장되어 있는 1500여점의 작품 중 63점의 작품이 암스테르담으로 건너왔다. 현재 암스테르담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17세기 중반에 그려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며 몇몇의 작품들은 러시아로 건너간 뒤 네덜란드에 한 번도 반출된 적이 없는 작품들이라 하니 고향을 찾은 그림들의 감회가 새로울 듯하다.

   
램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1606~1669)의 플로라(Flora), 1634년, 캔버스에 유채.


이 특별한 전시회 속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품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거장 램브란트의 ‘플로라(Flora)’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이 작품은 박물관의 주요 걸작품으로 꼽히기에, 이번 전시는 상당히 특별하고 큰 의미를 가진다. 그림의 프레임 또한 그대로 옮겨와 보안과 파손주의에 특별한 신경을 썼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은 1634년 램브란트가 그의 아내 였던 사스키아 (Saskia van Uylenburgh, 1612-1642)를 고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꽃의 여신‘플로라’로 형상화 한 것 이다. 사스키아는 왼쪽으로 몸을 튼 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에는 꽃이 감긴 지팡이를, 왼손에는 그녀의 겉옷을 살짝 들고 있다. 사스키아의 머리도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채 꽃과 풀로 장식된 화관을 쓴 사스키아는 영락없는 여신의 자태를 보여준다. 어깨에서부터 떨어지는 망토는 그녀를 더욱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있으며 왼쪽으로 부터 들어오는 빛은 어두운 배경과 대조를 이루며 사스키아만을 빛나게 밝히고 있다. 작품제작 시기와 두 사람의 결혼시기가 같은 것으로 볼 때, 아마도 램브란트는 사스키아를 위한 결혼 선물로 이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사스키아는 이 작품 외에도 수차례 렘브란트의 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네덜란드 북쪽지방에서 저명한 법조가문의 막내딸로 부유하게 자랐지만, 12살이 되던 해에 고아가 되고 만다. 그림 판매상을 했던 삼촌을 통해 램브란트를 알게 된 사스키아는 22살에 그와 결혼했다. 결혼식도 순탄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귀족 출신의 사스키아와 예술가의 결혼은 당시의 관습에 어긋났던 것. 이들에게서 나온 세 명의 자식들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각기 운명을 달리했고, 이후 어렵게 아들 티투스(Titus)를 얻었다. 그러나 사스키아는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티투스를 낳은지 1년여만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여인이 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 29세였다. 사스키아는 램브란트에게 재혼을 하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아들 앞으로 남긴 유산의 사용을 허락했다.

그러나 램브란트는 집안일을 돕던 가정부를 정부로 맞았고 자금난에 시달리던 1662년에는 급기야 사스키아의 무덤까지 팔아버리고 만다. 한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화폭에 담아내던 사랑꾼 렘브란트에게도 영원한 사랑이란 없었던 것 같다.

전시 이후 이 작품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화관을 쓴 비운의 여인으로 기억 될 ‘플로라’를 만나려면 러시아까지 가야 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볼거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해 이 곳 암스테르담으로 도착 할 것이다. 영원함 속에서 무한한 변화에 발맞춰 걷는 암스테르담 에르미타주 박물관. 네덜란드에서 작은 러시아를 만나보자!


주소: Amsterl 51, Amsterdam
운영시간: 월-일 10:00-17:00
홈페이지: https://hermitage.nl/
입장료: 성인 25유로, 11세 이하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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