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검정 고무신
추억의 검정 고무신
  • 경남일보
  • 승인 2018.04.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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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희
베이비부머 세대에는 검정 고무신에 얽힌 추억을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흰나비 고무신을 신은 필자는 검정고무신이 너무 신고 싶어 초등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부모님 몰래 신발을 바꾸어 신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멋으로 각종 행사가 있을 때나 무대에서 시낭송을 하게 되는 날에 어김없이 생활 한복과 검정고무신에 두건까지 갖추고 나갑니다. 거울에 보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산골 여인으로 보입니다.

어느 날 검정고무신에 필자가 그린 연꽃 신발을 신고 나갔더니 모두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오래전 그림공부를 했던 탓에, 검정 고무신에 연꽃, 모란동백, 불두화, 패랭이꽃, 동자꽃 등등 그림을 직접 그려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보는 지인들 마다 탐을 내며 하나, 둘 주문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고무신에 그림을 그려 팔게 되었습니다. 덤으로 광목천, 에코가방과 옛날 기왓장에다 그린 그림들도 여기저기서 주문을 해오는 바람에 이것이 팔자에도 없는 부업이 돼버렸습니다.

지난주 베트남 다낭에 일주일간 가족 휴가 겸 다녀왔습니다. 남편과 연꽃신발 커플로 가져가서 신고 다니니까 세계 각국 관광객들은 신발만 바라봐, 시선 집중의 대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작년 부처님 오신 날에 지인 열 분과 함께 절을 방문하면서 갖가지 그린 검정고무신을 신고 갔더니 도대체 무얼 하는 단체에서 왔냐고 하며 환호성을 외치며 시선들이 따가웠습니다. 온종일 검정고무신으로 인해 박장대소한 하루였습니다. 기쁨 두 배의 즐거움을 선사한 그날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옛날, 조선 사람은 짚신과 미투리를 주로 신었는데 가죽과 비단으로 만든 신발은 신분이 높은 양반이 신을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한양으로 과거 시험 보러 갈 때 신발이 빨리 닳아서 괴나리봇짐에다 여러 개를 챙겨가는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비가 올 때 신는 나막신도 두꺼운 버선을 신지 않으면 발이 아파 멀리 갈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고무신 한 켤레 값이 짚신 다섯 켤레 값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도랑을 막아 물고기를 잡고, 운동장에서 고무신 멀리 차기놀이를 했으며 고무신이 닳으면 엿장수 아저씨에게 달려가 엿과 바꾸어 먹었던 검정고무신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추억이 좋아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그려놓고 착각에 빠집니다. 추억을 먹고 사는 필자는 몇십 년 전부터 골동품 수집이 취미였습니다. 손때 묻은 놋그릇을 아직 사용하며 문명과 세대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과거에 갇혀 사는 촌 아낙인가 봅니다. 어찌 보면 이방인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정삼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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