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사직단을 아십니까
진주 사직단을 아십니까
  • 경남일보
  • 승인 2018.04.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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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

 

인간은 오래전부터 토지 위에서 생활과 생산을 영위해왔다. 토지는 모든 생존의 기본이다. 집과 음식은 토지 위에서 창출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의 도시계획에는 토지신과 곡식신을 모시는 성소(聖所)가 포함된다. 토지신은 ‘사(社)’, 곡식신은 직(稷)‘이라고 하여 사직단(社稷壇)을 설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직단을 설치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발견된다. 고려 성종 10년(991)에 사직을 세웠고 조선은 태조4년(1395) 인달방에 역시 사직을 설치했다. 한양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동)에는 종묘를, 오른쪽(서)에는 사직단을 각각 설치하였다. 이를 좌묘우사(左廟右社)라 한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들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이다. 사직단에는 기곡제(祈穀祭), 기우제(祈雨祭), 기청제(祈晴祭), 기고제(祈告祭) 등이 열렸다. 종묘와 사직은 왕조의 존망을 결정하는 정신적 지주이기 때문에 종묘사직은 종종 국가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도시의 인문적 특성을 오랫동안 천착해 온 한국국제대 신상화 교수는 도시계획의 이상향을 기술한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 좌조우사(左祖右社) 배치의 기술이 있고 대도(북경)의 공간배치에서 북경성 내의 자금성 앞 좌우로 좌측에 태묘(太廟), 우측에 사직단을 배치하여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신상화, 2014).

한양 이외 도시들은 종묘와 유사한 시설을 설치하였다. 진주는 관아(官衙)시설을 중심으로 좌측(동쪽)에 위치한 공립학교 향교에서 이 기능을 수행하였다. 조선시대 진주에는 진산 비봉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향교, 서쪽에 사직단, 남쪽에 성황단, 북쪽에 여제단(여祭壇)을 설치했다. 즉, 조선초 전국 군현에 설치한 1묘3단(廟壇)의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진주 사직단은 18세기초 진주 고지도, 19세기 진주성도(LH 박물관 2층 계단에 설치, 원본은 규장각)에도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 진주 사림 성여신이 1632년 완성한 진양지(晉陽誌)는 진주목의 풍속, 지리, 성곽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주(州)의 서쪽 5리 대롱사((大籠寺) 위에 사직단이 있다. 제례는 2월과 8월에 봉행하고 가뭄이 심하거나 풍년을 기원할 때 기우제와 기곡제를 지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진주 사직단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들어 대부분 훼손되어 지금은 기단석 등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2010년부터 사직단 복원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향토사학자 최진수 선생은 50여년 전만 해도 잘 정리된 담장과 8개의 좌판(坐板)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밭 경작을 위한 농로가 개설되고 차량통행이 가능해지면서 좌판은 없어지고 쓰레기장으로 방치되었다. 당국의 방관으로 소유권이 개인으로 넘어가고 소유권자의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오랫동안 관심을 받지 못한 사직단은 지난 2013년 상봉동 동지(洞誌)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복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최진수 선생을 비롯한 뜻있는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토지소유자 문중과 협의하는 한편 관련 세미나, 언론보도 등이 진행되어 왔다. 드디어 2017년 6월 경남도에 문화재 지정신청서가 접수되어 현재 경남도의 심의절차가 진행중이다. 경남도는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하여 토지소유자의 동의서를 징구하지는 않고 지정되어도 소유권은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유자 동의가 중요한 만큼 복원추진위원회는 소유 문중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오고 있다.

진주 사직단지(社稷壇址)는 진주시 상봉동 산 1246-1에 소재한다. 경진고등학교 옆 좁은 골목으로 조심해서 운전해 올라가면 정상 부분에 있다. 인근 밭을 제외하면 688㎡ 규모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비교적 고지에 위치하여 진주시내 조망이 우수할 뿐 아니라 복원될 경우 역사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다. 건너편에는 주민들과 유림이 매년 산신제를 봉행하는 허리 잘린 황새등이 있다. 산청군 사월리 단성사직단은 2005년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대구 달성(옛 현풍) 사직단은 향토사학자와 유림의 노력으로 2010년 지자체에서 개축, 복원했다. 대구시 노변동 사직단(盧邊洞 社稷壇)은 2006년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는데 서울의 사직단과 같이 화려한 홍살문을 자랑한다. 역사문화도시 진주의 사직단 복원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뜻있는 인사들의 노력으로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시민들과 당국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최임식(LH 지역발전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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