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아름다운 꽃은 홀로 피지 않는다
[경일시론] 아름다운 꽃은 홀로 피지 않는다
  • 경남일보
  • 승인 2018.04.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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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언제부터 이 세상에 출현했을까? 원래부터 있었을 것 같지만 세상에 ‘원래부터’는 없다. 반드시 시작이 있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꽃도 마찬가지다. 꽃이 세상에 출현한 건 1억4000년쯤 전이라고 한다. 식물은 꽃을 통해 수분하고 짝짓기를 하여 번성하게 된다. 그것을 실패하면 꽃도 나무도 죽어가게 된다. 꽃에는 식물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해온 세상의 원리와 질서가 들어있다. 무슨 일이든 대충하면 결과도 대충 나온다는 세상의 이치가 꽃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꽃들도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어떤 꽃은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없는 데다 꿀도 없는데 그런 꽃은 뭘까? 이런 꽃은 짝짓기를 바람에 맡긴다. 바람에 맡기니 누구에게 아름답게 보일 일이 없다. 예를 들어 참나무가 그런 경우다. 워낙 많은 숫자이기에 나무 자체가 노랗게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가가서 보면 거대한 덩치의 나무에 비해 꽃은 아주 작다. 작아야 바람에 흩날리기 쉽고, 많아야 수분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봄이면 주변을 뿌옇게 만드는 송홧가루를 날리는 소나무도 그렇다.

동백꽃은 왜 꿀은 있는데 향기가 없고, 어느 순간 툭 떨어질까? 짝짓기를 해주는 동박새가 겨울에만 날아오니 겨울에 피는 것이고, 새가 좋아하는 색이 붉은색이니 그렇게 준비하는 것이고, 향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굳이 내놓을 이유가 없다. 고객이 좋아하지 않는데 왜 하겠는가? 어느 날 툭 떨어져 버리는 것도 짝짓기가 끝나 더 이상 꽃을 달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꽃이란 고객을 위한 것인데 임무가 끝난 꽃을 왜 달고 있겠는가. 꽃을 피우는 것, 향기를 내뿜는 것, 모두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기에 필요 없는 일에 힘을 쓰지 않는다. 고객 지향적인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한마디로 아름다운 꽃은 홀로 피지 않는다. 아름다울수록 혼자 피는 꽃은 없다. 나 홀로 아름 답자고 피는 꽃은 없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피는 것도 아니다. 꽃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라는 상대가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아름다운 몸짓이다. 이것이 꽃의 존재이유이다.

이 아름다운 몸짓이 또 다른 세상을 만든다. 꽃은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는 것이고, 벌과 나비와 새도 꿀과 꽃가루를 채취하는 것이 자기네가 먹고살기 위한 일을 할 뿐이다. 양쪽 다 자신을 위해 상대에게 의지하는 행위다. 이 서로 의지하는 행위가 묘하게도 서로를 번성하게 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이뿐인가. 수많은 동물을 먹여 살리는 생태계의 기반을 제공한다.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잘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협력하고 공생하는 원리와 질서가 어떤 것인지 너무도 멋지게 알려주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와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 법정스님이 ‘산방한담’이란 책에서 말했듯이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봄이다. 꽃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지 않은가? 그러면 우리도 꽃처럼 해보자!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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