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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68>함안 백이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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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4  02: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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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미정에서 바라본 백이산과 숙제봉.

◇어계 선생의 충절이 서린 백이산 둘레길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고죽국의 왕자였는데 아버지가 죽으면서 셋째 왕자인 숙제에게 왕위를 계승하도록 유언하였으나 숙제는 맏형인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했고 백이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야 한다고 왕위 계승을 거부한다. 백이숙제는 주(周)의 문왕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주나라로 피신해 버린다. 주의 문왕이 죽고 그 아들인 무왕이 즉위하자, 두 사람은 무왕의 신하가 된다. 당시 천자(天子)인 은나라 주왕이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일삼으며 학정을 거듭하자 주의 무왕은 혁명을 일으킨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출정하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고 신하된 입장에서 왕을 시해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간언하지만 무왕은 이를 뿌리치고 은나라 주왕을 제거하고 주나라를 세운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행위가 인의(仁義)에 위배된다고 여겨 벼슬을 버리고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거부한 채, 수양산에 들어가 은거하며 고사리를 캐먹고 지내다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조선 초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 조려 선생이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있을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비분을 참지 못하고 단종을 향한 절의를 지키기 위해 고향인 함안 군북면 원북리에 있는 어계생가로 내려와 죽을 때까지 은거했는데, 그 충절이 백이숙제에 견줄만했다고 한다.

백이산과 숙제봉은 원래 쌍안산과 쌍봉산으로 불렸는데, 숙종이 어계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백이산과 숙제봉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고 한다. 백이산과 이웃한 곳에 어계 선생을 숭모하기 위해 세운 서산서원과 채미정, 선생이 살았던 어계생가가 있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너무나 쉽게 신의를 져 버리는 오늘날, 어계 선생의 참된 삶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가를 되새기기 위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좌 수강생들과 함께 함안 군북에 있는 백이산·숙제봉 둘레길 힐링여행을 떠났다.

 
   
▲ 백이산 둘레길의 솔숲길.


◇솔향기 그윽한 백이산·숙제봉 둘레길

백이산·숙제봉 둘레길은 함안 군분역에서 시작된다. 곳곳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둘레길을 걸을 수 있다. 백이산과 숙제봉을 8자형으로 이어놓은 둘레길은 총 8㎞ 정도 되는데, 잘 조성된 숲길에는 각시붓꽃, 양지꽃, 줄딸기꽃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어 탐방객들의 눈을 호강시켜 준다. 백이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고 했는데 혹시 백이산에도 고사리가 많은지를 살펴보니 고사리는 눈에 잘 띄지 않고 다래 덩굴이 지천으로 있었다. 4월의 솔숲길, 향긋한 솔향기와 새잎 돋아나는 활엽수의 풋풋한 향기, 그리고 산벚나무꽃과 산복숭아꽃들이 어울려 봄의 향연을 벌여 놓고 있었다. 축제는 사람이 만든다고들 하지만 산에서는 축제를 여는 존재는 봄이다. 사람은 관객이요, 그저 손님일 뿐이다. 축제를 여는 주인은 봄이지만, 봄이 펼쳐놓은 축제를 즐기고 행복을 만끽하는 주인공은 사람이다.

   
▲ 백이산 공룡발자국 화석.


백이산과 숙제봉 왼쪽 길을 따라 솔숲으로 이어진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서 약수터를 좀 지나면 공룡발자국 화석과 수많은 돌탑을 만난다. 안내판에는 공룡발자국을 발견한 사람과 돌탑을 축조한 사람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밝혀 놓았는데, 어떤 분일까 몹시 궁금했다. 공룡발자국 화석과 돌탑군을 지나 계곡을 따라 난 대나무숲길을 걸어서 평광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맨 위쪽에 공룡발자국을 발견하고 돌탑을 쌓은 이부영·마금자 부부가 사는 집이 있었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이부영 씨가 산행차림의 필자 일행한테 인사말을 건네며, 자신의 목공예 공방으로 안내해서 저간에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공룡발자국은 2004년 10월 부부가 백이산 등산을 하던 도중, 잠깐 바위 위에서 쉬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 이부영 마금자 부부가 쌓아놓은 돌탑.

그날 이후, 백이산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거움,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돌탑을 직접 축조했는데 탑 속에 쇠기둥을 박아서 쌓았기 때문에 웬만한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부부는 거의 매일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과 돌탑군, 그리고 백이산 둘레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진정한 베풂과 자연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자연을 사랑하고 탐방객들에게 힐링과 행복을 선물하는 사람이 바로 ‘현대판 백이숙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처럼 한 임금을 위해 충절을 다하는 것이 ‘옛날의 백이숙제’의 삶이라면, 많은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밑거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선행을 하는 이들 부부의 삶이 곧 ‘현대판 백이숙제’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벼슬을 해서 많은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높은 자리에 앉아 남을 괴롭히는 일을 일삼는 사람들보다 훨씬 고결한 삶을 살아가는 분이요, 아름다운 인생을 엮어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서산서원의 전경.

◇단아하면서 기개가 서린 어계생가

백이산·숙제봉 둘레길 탐방을 마치고 4㎞ 떨어진 서산서원과 어계생가로 향했다. 도로변에 연지(蓮池) 위로 놓인 무지개다리를 지나 들어간 서산서원엔 일요일인데도 탐방객은 필자 일행뿐이었다.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을 들은 뒤, 서원 동쪽 경치가 수려한 곳에 지어놓았다는 채미정으로 갔다. 백이·숙제가 수양산에서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키기 위해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를 캐먹으며 연명하다 굶어 죽었다는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정자이다. 채미정 옆 문풍루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낙타의 쌍봉처럼 우뚝 솟아 있는 백이산과 숙제봉이 그윽한 눈빛으로 탐방객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채미정에서 원북마을 쪽으로 500m 정도 가니 수령 520년 된 은행나무가 집을 지키는 어계생가가 있었다. 어계 선생의 성품을 닮아서 그런지 아주 정갈하고 단아했다.

만약 어계 선생과 백이숙제가 지금도 살아계신다면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이산·숙제봉 둘레길 탐방에서 옛날의 백이숙제와 현대판 백이숙제를 한꺼번에 만나고 돌아오는 마음이 감격으로 벅차올랐다. 저녁 햇살을 이마 가득 머금은 백이산과 숙제봉이 발걸음을 옮기는 필자의 일행을 향해 밝은 미소로 배웅해 주는 듯했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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