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산하동범 재현을 바라며
용화산하동범 재현을 바라며
  • 경남일보
  • 승인 2018.04.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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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동범(同泛)은 강에 띄운 배를 타고서 시문을 짓고 풍류를 즐기는 문화적 집회다. 선유라고도 하며 높은 곳에 올라가 시문을 즐기는 등고(登高)와 함께 대표적인 선비문화로 꼽힌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물놀이 장면이 나오며 소동파가 적벽에서 선유하고 ‘적벽부’를 지은 후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낙동강은 이현보와 이황에 의해 가단(歌檀)이 만들어짐으로써 정형화되고 독특한 문화로 발전했다.

기록을 보면 1800년대까지 십 수차례가 열렸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용화산 아래의 동범’(龍華山下同泛)이다.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고 참석한 사람의 면면이 훌륭할뿐더러 낙동강 700리 최고 절경이라는 용화산의 경치도 한몫했다.

1607년 정월 27일 영남유림의 태두인 한강 정구가 함안군 대산면 도흥나루에 내려온다. 함안군수 시절 구해두었던 비석으로 쓸 돌이 강물에 휩싸이자 잠수부를 데리고 온 것이다.

다음날 정구와 곽재우, 박충후 함안군수, 장현광을 비롯해 함안·창녕·성산인 등 총 35명이 두 척의 배를 타고 합강정에서 창암사까지 동범을 가졌는데 대부분이 왜적과 싸웠던 분들이었다. 그날 용화산하동범록이 만들어졌고 1620년 조임도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적은 추서를 남겼으며 1728년에는 박진영의 후손인 박상절이 여덟 장의 그림에 시를 붙이고 ‘기락편방’이라는 책을 남겨 동범을 기렸다.

1955년 합강정에서 선비 41명이 선유를 하면서 낙강동범계가 창립되어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며 도흥나루 인근 칠서면 계내리 모현정에서도 동범의 후손들이 해마다 모임을 갖고 있다.

아쉬운 것은 현재 동범을 재현하는 행사가 없는 것이다. 자연과 함께하면서 절제된 품격으로 시를 읊었던 수준 높은 문화를 이을 길이 없어지고, 의병이나 관군으로 왜적과 싸웠던 분들의 정신을 본받을 좋은 기회도 사라져 버렸다.

용화산하동범은 함안, 의령, 창녕뿐만 아니라 성산, 고성, 현풍, 칠곡 등 여러 고을에서 참여했기 때문에 재현행사가 이루어진다면 영남이 추진하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문화가 경쟁력인 시대에 경남도가 이를 주도한다면 낙동강에서 꾸준히 이루어졌던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관광 경남의 기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용화산하동범 재현이 이루어져서 소중한 가치를 지켜가는 문화 경남의 시대가 열리고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를 고대한다.
 

조정래(함안군 환경위생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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