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균(농업인·이야기를 파는 점빵대표)
여행을 가면 으레 하는 버릇이 있다. 동행들이 여행지의 늦잠을 즐기는 시각, 나는 일찍 숙소 주변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린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오래 비워 둔 폐가의 정지문에 부지깽이로 쓴 낙서 한 줄에도 이야기가 있고, 고양이와 놀고 있는 허리 굽은 할머니 얼굴에도, 세월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아침잠을 포기하고 골목길 탐방을 끝내면, 가슴에는 이야기가 한 보따리 쌓인다.
이런 내 취향 때문인지, 몇 년 전부터 민박 온 손님들을 모시고 ‘어슬렁 투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꽤 반응이 좋다. 정해 놓은 목적지 없이 골목길을 걷다보면, 뜬금없는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감탄한다. 감나무 그늘에 내어놓은 평상에 앉아 봉지커피를 마셔도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워한다. 골목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몇 년 전, 딸을 데리고 전주 한옥마을에 갔을 때 일이다. 자주 다니던 큰 길 대신 골목을 탐방하자고 뜻을 모았다. 초코파이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서서 기다려주어야 할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두 평 남짓한 좁은 공방에서 혼자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주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에 슬며시 들어갔더니, 바느질 하던 아낙이 말했다. 참 정겹게 들리는 한 마디였다. 골목 안 기웃거린 죄. 이런 아름다운 죄목에 걸리면 영락없이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벽에 걸린 자수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손수 내린 커피가 나왔다. 향이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커피 보다 더 진한 골목길의 인정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찾는 사람이 적은 골목 안이라 블로그에 소개라도 해 드리려고 사진을 찍으며, 전화번호를 적어 드리고 공방을 나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그분에게서 문자가 왔다. 십여 년 전, 지리산 어느 농가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려 참석한 기억이 있는데, 혹시 그 집이 아니냐고. 골목 안을 어슬렁거린 탓에 우리는 인연을 다시 이은 셈이다. 골목이 주는 재미는 이렇듯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조금 일찍 일어나 아침의 풍경을 즐기는지 모르겠다.
길게 줄을 서야 겨우 밥 한 그릇 사 먹을 수 있는 대로변 상가에서 어찌 이런 즐거움을 맛보겠는가. 골목길 어슬렁 투어를 즐기는 까닭이다.
공상균(농업인·이야기를 파는 점빵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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