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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칼럼]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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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30  20: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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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재(국제마인드 교육원 교육위원)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이후에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는 나라였다. 그러나 그 당시 굶어죽는 사람은 있고, 얼어 죽는 사람은 있어도, 자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지금 국민소득 3만 불의 대한민국은 자살률 1위인 자살 공화국이 되었다. 무엇이 이토록 강인한 국민들로 자살을 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그들 마음에 있는 절망 때문이다. 눈을 떠도, 삶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에, 아침이 되는 것도 기쁜 일이 아닌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절망이 스스로 고귀한 생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세상에 희망이 없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서울에 살 때에 가까운 도봉산, 불암산 자락을 등반하다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절경에 맞닥뜨린다. 바위 위에 수 백 년을 적어도 고고하게 살아온 듯한 굽은 소나무, 어디서 물을 공급받고 살기에 저리도 강인하고 끈질기게 살아 왔는가. 세상 어디에도 자살하는 소나무는 없다. 아무리 열약한 환경에 살아도 신이 내린 고귀한 생명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호주의 건기 철이 지날 때쯤 스프링벅이라는 양떼들이 해안절벽지대에 집단으로 떨어져 죽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인류학자들은 인간 외에도 자살하는 동물이 있는지 조사를 했고 그 결과 상상 밖의 답이 나왔다. 그들은 너무나 약한 동물이라, 풀을 뜯어 먹을 때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 풀을 뜯어 먹는다. 건기가 지나면서 푸석한 땅이 두더지가 굴을 파거나 해서 갑자기 꺼지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뛰기를 시작한다.

옆에 있는 양떼도 놀라서 덩달아 뛰면서, 집단체면에 걸린 듯이 그들이 별다를 이유 없이 집단 두려움으로 앞을 향해 질주를 하다 해안절벽을 만나고, 집단 자살이라는 웃지 못 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살은 사고하는 인간만이 한다. 사고할 줄 모르는 짐승들은 본능을 따라 어려움을 견뎌내고, 끝까지 살기위해 발버둥을 친다. 절망은 생각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제없이 견뎌 낼 것이다. 너무 바쁘게 살다보면 힘들다는 생각할 기회조차 없다.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또 그것을 곱씹는 동안 절망은 자라서 마음을 덮는다. 그리고 내일 떠오르는 태양 빛조차 밝고 환하게 여겨지지 않고 어둡고 암울해 보이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다. 아프리카의 반군은 대개 어린 소년들이다. 그들이 무슨 정치를 알겠는가. 왜 그토록 어린 나이에 총을 메고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놀이를 하는가. 누군가 그들에게 계속해서 절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이 국가에 대한 절망, 사회나 조직에 대한 절망, 장래에 대한 절망이 가방을 던지고 총을 잡게 만든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있어도 이 세상에 절망은 없다. 절망은 내가 내린 사고의 결과이다. 만약 생각을 바꿀 줄 안다면, 정말 어렵고 힘이 들 때에, 이것은 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다. 앞으로 내가 좀 더 강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전환한다면, 힘든 것이 절망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이다.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이라고 지금 부르고 있는 곶(串)을 그때에는 ‘거센곶’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곶 앞바다의 파도가 어찌나 거센지 그 곳을 무사히 지나간 배가 한척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을 모르는 담대한 탐험가 바스코다가마가 그 곶을 한번 돌파해 보려고 결심했다. 그는 그 일에 성공하기만 하면 인도와 동양을 자기의 조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마침내 그는 그 곶을 도는데 성공했다. 오늘날 아프리카 남아공에 가면 그의 기념비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세상에 ‘거센곶’이라고 알려진 그 곶을 지나는데 성공한 그때부터 그 곶 이름이 ‘희망봉’이라고 바뀌었다. 절망과 희망은 생각의 차이에 불과하다.

 


오세재(국제마인드 교육원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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