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9]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9]
  • 경남일보
  • 승인 2018.05.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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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프랑크의 집
안네 프랑크 하우스 전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운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가운데에는 밤낮으로 줄을 서서 기다려도 입장할 수 없는 박물관이 하나 있다. 원하는 날짜에 방문을 하려면 두 달 전쯤 인터넷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공되는 오디오가이드를 이용해서 관람해야 하기 때문에 입구에서 또 한번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내일 있을 일도 알 수가 없는 세상인데, 두 달 후에 생길 일을 그 누가 알겠는가. 예약 해놓은 날짜마다 다른 일정이 생겨 관람기회를 번번히 놓쳤다가 마침내 작은 건물 안 꽁꽁 숨겨진 비밀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책장 뒤로 이어진 좁은 통로를 지나면 안네프랑크 일가가 숨어 살던 곳을 관람할 수 있다.

책장 넘어 좁은 통로로 이어지는 조그마한 방에서 안네 프랑크를 만났다. 안네 프랑크(Anne Frank, 1929~1945)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태생으로 유대인 아버지 오토 프랑크(Otto Frank, 1889~1980)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사업가였던 아버지 덕에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933년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권력의 중심에 섰고 유대인들을 강압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태가 점점 심해지자 오토는 가족들을 데리고 네덜란드로 건너왔다. 전쟁이 유럽대륙까지 위협하자 오토와 그의 가족들은 영국이나 미국으로 이민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이 영향은 네덜란드를 피해가지 못했다. 독일군은 단 5일 만에 항복을 선언한 네덜란드를 점령해 버리고 말았다.
▲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은 겉옷에 유대인을 상징하는 마크를 부착하고 다녀야 했다.

이후 나치군은 네덜란드에 살던 유대인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기 시작했다. 신분증에 ‘J’라는 이니셜로 유대인을 구분했으며 ‘No Jews’(유대인 금지)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붙기 시작했다.

반 유대인 규율이 점점 엄격해지고 세분화 되면서 유대인들은 일반 학교 대신 유대인 학교에 다녀야 했다. 또한 영화관, 수영장 출입까지 금지된 유대인들의 삶은 사실상 한 인간으로써의 삶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을 위한 노동 참여의 명목으로 편지를 받은 수많은 유대인들이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수용소로 압송되기 시작했다. 1942년 7월 6일 안네의 언니 마르고트도 같은 편지를 받게 되었고 안네의 가족들은 마르고트가 그 편지의 요구에 응한다면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토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사무실로 쓰던 집에 비밀통로를 만들어 몸을 숨기기로 계획했다.
▲ 안네 프랑크의 가족 사진.

이때부터 안네의 가족들과 오토의 사업 파트너였던 헤르만 가족을 포함한 8명은 독일 경찰의 눈을 피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761일을 바깥세상과 단절한 채 숨어 지냈다. 어떻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러한 배경에는 안네의 가족들을 몰래 도와주던 조력자들이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식량난이 심각해져 배급만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을 때에도 식량을 몰래 가져다 주었고, 안네와 마르고트가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교재를 제공해주는 등 도움이 발각되면 즉시 처벌당하는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들의 눈물겨운 도움 덕분에 불가능할 것 같은 비밀공간에서의 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숨어 지내는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길고도 엄격했다. 은신처의 아래층 회사 직원들에게 비밀거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속삭이듯 말하는 것은 기본 규칙이었으며,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에는 화장실 사용이나 세탁을 하지 않아야 했다.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시간이 돼서야 서로 작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시간동안에는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안네는 그녀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들을 고스란히 일기장에 담았다. 숨어 지내기 직전 안네가 생일선물로 받은 빨간색 체크 일기장은 외로운 소녀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내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나는 세계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인류를 위해 일 할 것이다.” (1944.4.11. 안네의 일기)

나치 정권의 잔혹한 탄압 아래 어두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사건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다.

영국에 주둔하며 유럽대륙으로 진군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던 연합군은 교란작전을 이용해 독일군을 따돌렸고 노르망디에 13만의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킬 수 있었다. 처음으로 ‘D-Day’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뒤바꾸는 큰 시작이 됐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는 라디오를 들으며 점점 가까워 오는 전쟁의 종결을 꿈꾸며 지도에 연합군의 진군을 표시해 나갔다. 벽에 붙은 오토의 지도는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손꼽아 자유의 날을 기다린 그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한다.

1944년 8월 4일, 연합군을 기다리며 바깥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던 그들의 꿈이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누군가의 제보로 8명의 은신처를 파악한 독일군이 급습한 것. 이들은 체포 후 각기 다른 유대인 수용소로 보내졌는데, 8명 중 오토 프랑크만이 살아남았고, 안네는 전쟁이 종결되던 몇 주전 끝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다.

이후 오토가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을 도왔던 사람 중 한 명이 비밀 은신처였던 곳에서 발견한 안네의 일기장을 오토에게 전해줌으로써 안네의 이야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오토가 펼친 안네의 일기장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과 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13살 어린 소녀의 포부가 담겨져 있었다.

오토는 이 일기장을 출판해 전 세계에 알리기로 결심했고 1947년 3000권의 출판을 시작으로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는 등 연극, 영화로도 제작됐다. 안네의 일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10권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선정됐다.

또한 1960년, 빛을 보기 위해서 어둠 속에 숨을 수밖에 없었던 비밀공간은 지금의 안네 프랑크 하우스 박물관이 됐다.
▲ 안네 프랑크의 일기장.
▲ ‘안네의 일기’.

일기는 안네에게 하루 일과를 더듬어 기록해 나가는 일의 의미 뿐만 아니라, 언제나 움츠려야 했던 좁은 집에서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하는 존재였다.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 놀 수 없었고, 계절이 가져다주는 변화도 창문을 통해서 지켜봐야 했지만 일기장을 통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8명이 숨어 지내기에는 너무나 좁고 초라했던 집. 그러나 먼저 수용소로 끌려간 이들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 곳을 천국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했던 집. 그곳에 직접 들어서면 우리가 살아 숨쉬는 공간에 대한 자유로움에 감사하게 되고, 상쾌한 바깥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실 수 있다는 그저 당연한 일에 또 한번 감사하게 된다.

소녀의 아름다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소녀는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애와 평화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주소: Prinsengracht 263, 1016GV Amsterdam,네덜란드
운영시간: 월~일 9:00~22:00(하절기)
홈페이지: http://www.annefrank.org/
입장료: 성인 10유로, 청소년 5유로, 9세 이하 무료

 
안네 프랑크(Anne F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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