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69>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69>
  • 경남일보
  • 승인 2018.05.0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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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의 길’
필자의 대학 선배 한 사람이 ‘무소유’를 읽은 뒤 출가를 했다. 그리고 1997년 서울 성북구 대원각 요정의 주인인 김영한(길상화) 보살이 당시 시가 1000억 상당의 땅과 건물을 길상사로 리모델링 해서 법정스님께 기증을 했는데 이 또한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를 읽고 감동 받아서 정업(淨業)을 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무소유’의 사상을 전파해서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 법정스님이다. 200자 원고지 스무 장도 안 되는 짧은 수필 한 편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도 크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실천궁행의 삶이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순천 송광사에서 법정스님께서 17년 동안 수행한 불일암까지 1.5㎞의 ‘무소유의 길’,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체험론적 시창작과 힐링’ 강좌 수강생들과 함께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스님의 철학을 옷깃에 스미도록 하기 위해 힐링여행을 떠났다.
 
▲ 대나무와 삼나무로 어우러진 무소유길.

◇청정한 대바람이 열어놓은 무소유의 길

6.25전쟁을 겪으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를 품은 채, 1954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효봉스님을 은사로 삼아 출가한 법정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을 본 뒤, 독재자에 대한 증오심을 이기기 위해 불일암을 중건하여 수행생활에 전념하면서 수필집 ‘무소유’를 펴낸다.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일암에 찾아오자, 수행에 방해가 됨으로 승려로서의 본질인 수행을 위해 1992년 17년 동안 불일암에서의 수행생활을 그만두고 강원도 오지에 있는 오두막으로 떠난다. 이후 길상사 등지에서 수행생활을 하시다 건강 악화로 2010년 40여 권의 저서와 실천궁행의 선업을 남긴 채 입적을 하셨다. 법정스님의 청정한 삶이 배어있는 ‘무소유의 길’을 더듬어 걸으면서 세상살이에 오염된 필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맑게 해 보고 싶었다.

송광사 왼켠, 편백나무 숲으로 나 있는 무소유의 길은 향긋한 편백향이 우리를 반겼다. 다른 둘레길을 걸을 때면 떠들썩한 분위기인데, 무소유의 길은 출발부터 순례길을 온 것처럼 경건한 분위기였다. 아름드리 편백나무들이 묵상하듯 서 있는 숲길을 지나자, 참나무 숲길이 나왔다. 스님도 꽃을 좋아하셨나 보다. 스님께서 걸으셨던 길섶에 제비꽃과 각시붓꽃, 꽃마리 등 봄꽃들이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기쁘게 해 주었다. 조금 가파른 길에 닿자, 동백꽃이 어우러져 핀 대나무숲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편백나무, 참나무, 대나무 숲길로 이어지는 무소유의 길에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라곤 하나 보이질 않았다. 곧으면서 살짝 휘어진 대나무숲길은 무척 서정적이었다. 이 길을 걸으시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글들을 집필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나무숲길이 끝날 무렵 만나는 삼거리에 불일암 이정표가 서 있고, 한쪽이 열린 사립문과 시누대숲 터널을 지나면 불일암이 다소곳하게 탐방객들을 기다린다. 비교적 넓은 공간이지만 건물은 세 채뿐이다.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해우소가 전부다. 스님의 무소유 사상이 그대로 담긴 절간이다. 꼭 필요한 것 외의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암자내 모퉁이마다 ‘묵언’이라고 써 놓은 표지판이 있었다. 승려로서의 본질인 수행을 강조하신 스님의 철학이 배어 있었다.
▲ 고즈넉한 불일암의 모습.
▲ 불일암 입구의 사립문.


불일암에 닿으면 맨 먼저 보고 싶었던 빠삐용 의자와 후박나무 아래 모신 스님부터 찾아뵈었다. 법당 앞뜰 큰 후박나무(향목련나무) 왼쪽, 스님의 유골을 모신 자리엔 작은 표지판 하나가 전부였다. 이곳이 ‘법정스님 계신 곳’이다. 한참이나 머리 숙여 묵례를 드렸다. 바로 뒤 법당 벽 앞에 스님의 의자가 있었다.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는 거야.’, 의자는 원래 ‘자리’ 란 개념으로 더 많이 쓰이지만, 스님이 만든 빠삐용 의자는 성찰과 비움을 위한 공간이다. 자투리 참나무 통장작에다 판자쪽을 대어 만든 스님의 의자 또한 무소유의 정신 그대로다. 의자 위엔 방명록과 탐방객들에게 선물할 책갈피통, 사탕바구니가 올려져 있었다. 어쩌면 스님을 청정한 무소유와 자발적 가난의 상징으로써 우리들의 가슴에 각인시킨 것이 이 의자인지도 모른다.

 

▲ 법당 앞에서 묵언수행 중인 고무신.
▲ 법정스님께서 직접 만드신 빠삐용 의자.


◇텅 비어 있어 더욱 충만한 불일암

의자 위쪽엔 활짝 웃고 있는 법정스님의 영정이 걸려있다. 참으로 환한 모습이다. 그리고 나무 섬돌 위엔 하얀 고무신이 묵언 수행 중이다. 정갈한 신발 안에는 고요와 더불어 스님의 법어가 가득 깃들어 있는 듯했다. 텅 비어 있는 것이 곧 충만이라고 한 말씀이 떠올랐다. 가진 것이 없어 더 많은 것을 남기신 스님의 거룩함이 필자를 부끄럽게 했다. 탐방객들 모두가 말을 잃고 있었다. 그 정적마저도 법정스님께서 물려준 유산인지도 모른다. 법당 문은 닫혀 있어 섬돌 앞에서 합장을 올렸다. 암자 뒤쪽엔 자정국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인 묘광탑이 있었다. 무척 단아한 모습이다. 처음 이곳엔 자정국사께서 세운 자정암이 있었는데, 법정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으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묘광탑에서 내려다본 불일암은 정말 고즈넉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산사에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새잎을 피우는 나무들의 속삭임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뜰 모퉁이엔 스님께서 여름 한 철 사용하셨다는 목간통이 묵언 수행 중이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고 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평상시엔 무엇이든 얻으려는 마음으로 절을 찾았지만, 오늘은 그냥 모든 걸 비우고 싶다. 진정한 버림과 비움이 곧 충만함이란 깨우침을 필자를 따라 내려오는 계곡물이 끊임없이 들려주는 듯했다.

/박종현(시인·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법정스님께서 직접 만드신.목간통

법정스님을 모셔놓은 후박나무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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