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야기, 명나라 왕비
최고의 이야기, 명나라 왕비
  • 경남일보
  • 승인 2018.05.0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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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1372년 12월 20일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남경에 고려 사신들을 불러놓고 박씨 성을 가진 재상이 명나라 사신을 독살한 것과 말을 보내주지 않음을 꾸짖는 내용이 ‘고려사’ 1373년 7월조에 실려 있다.

주원장은 박 재상과 자기가 데리고 있는 주씨 성을 가진 여자의 아버지와 일가, 환관 4∼5명을 명나라로 보내라고 요구하는데 공민왕은 아버지인 주영찬만 사신으로 파견해 자주 외교를 보인다.

이 함안여자는 열세 살인 1355년 원나라에 공녀로 갔다가 1368년 포로로, 다시 궁녀가 되고 공민왕이 주원장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한 장녕공주와 귀국한 후 1373년 명나라 최초의 공녀가 된다.

주비(周妃)는 두 아들, 주편과 주송을 낳으며 주원장의 총애를 받는데 그로 인해 함안은 지군사로 승격되고 ‘쇠나라’인 ‘금라(金羅)’라는 별칭을 갖게 되며 1505년에는 도호부가 되기도 한다.

1639년 조임도가 지은 ‘금라전신록’ 은 ‘함안에서 전해지는 믿을 만한 이야기’라는 제목이어서 당시도 ‘금라’라는 명칭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상상하기 힘든 기구한 삶을 살아간 주비의 일생에서 더 놀라운 것은 당시로서는 할머니라 할 서른한 살의 나이에 공녀가 되고 주원장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이다. 절색은 견줄 데 없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자인데 주비가 절색이 아니었다면 천한 신분의 나이 든 몸으로 황후 외에도 26명이나 되는 후궁 중에서 눈에 띄었으랴. 가족과 떨어진 것을 걱정해 일가와 수발할 환관까지 요구할 정도였으니 그 총애와 미모가 짐작된다.

이와 연관돼 보이는 이야기가 1587년 지방지로서는 전국 최초로 편찬된 ‘함주지’ 에 실려 있다. ‘함주’는 고려시대 함안의 명칭이다.

‘노아’라는 기생의 아버지가 대역죄를 지었는데 벌을 주러 오는 안찰사마다 노아의 얼굴만 보면 반해 벌을 주지 못하므로 조정에서 특별히 믿을만한 사람을 보냈지만 그도 결국 벌을 주지 못하고 낙향해 ‘함안차사’라 했다는 것이다.

주영찬을 유배시킨 것을 주원장이 꾸짖는 내용이 있고 둘 다 절색이라는 점에서 주비의 이야기가 조선시대에 맞게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용화산 기슭에 노아의 무덤이 있다고 구전되는데 사실이라면 연천의 기황후 무덤보다 나은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탄탄한 뿌리가 있는 이야기는 생명력이 강하고 설득력도 월등하다. 함안이 그런 이야기를 잘 살리기를 기대한다.

 


조정래(함안군 환경위생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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