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195>광양 쫓비산
명산 플러스<195>광양 쫓비산
  • 최창민
  • 승인 2018.05.1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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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쫓비산 오르는 길


하동 악양 평사리 섬진강 너머에 백운산(1216m)이 거대한 장벽처럼 서 있다. 이 산에서 섬진강방향으로 가지친 한줄기 능선, 광양시 다압면에 쫓비산(536m)과 갈미봉이 있다. 백두대간 호남정맥이 내장산, 무등산을 거쳐 조계산에서 동진한 뒤 악양벌이 보이는 섬진강 곁으로 왔다가 쫓비산을 세우고 남으로 나란히 나아간다.


따라서 이 산의 조망은 유려(流麗)함을 자랑하는 섬진강이다. 전북 진안 팔공산 옥녀봉 아래 데미샘에서 발원한 물이 계곡에서 급하게 흐르거나 높은 데서 추락하면서 밭을 만나고 들을 적신 뒤 남해로 220㎞ 대장정, 마지막 느림의 미학을 풀어놓는다. 그 뒤로 지리산 형제봉 구재봉 줄기가 기운차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 쫓비산의 숲은 연초록과 에메랄드빛으로 채색되고 있었다. 나뭇잎이 조랑조랑 달려서 은신처가 늘어난 숲엔 고라니와 갓 태어난 뱀 등 야생동물이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쫓비산의 이름은 주변에 있는 산에 비해 모양새가 뾰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실제 멀리서 보면 그렇긴 하다. 그러나 실제 산행을 해보면 부드러운 육산임을 깨닫게 된다. 잘 다듬어진 도시 공원의 아름다운 산책로가 자그마치 5∼6㎞이어진다. 어떤 노련한 장인이 이러한 매력적인 산길을 만들 수 있으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생각해보면 도시에 이러한 힐링길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다 해도 규모와 길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등산로: 광양시 다압면 관동마을→매실밭→게밭골→배딩이재→갈미봉→바람재→누에바위→전망바위→쫓비산 정상→청매실농원·토끼재 갈림길→청매실농원→섬진마을→도사제방 따라 자전거 이용 관동마을 회귀. 9.5㎞, 휴식포함 5시간 40분 소요


들머리는 관동마을이다. 섬진강가 송정공원에 주차할 공간이 있다. 오전 9시 14분, 마을 안쪽에 쫓비산 6.5㎞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 온통 매실나무가 반긴다. 엊그제 매화축제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벌써 나무에는 메추리알만한 매실이 빽빽히 달려 있었다. 길바닥엔 간밤 센바람에 떨어진 매실이 ‘아그작’ 발밑에서 깨졌다.

마을에서 제법 올라온 지역, 친환경농업인의 농가 매실밭고랑에는 머위가 크게 자라고 있었다. 원두막휴게쉼터를 지나서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들면 초록수목이 뿜는 상큼함이 훅 밀려온다. 길 양옆 낮은 곳에는 시절을 조금 지난 단풍취와 취나물,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잘한 식물들이 초록카펫처럼 깔려 있다.

출발 1시간이 채 안돼 게밭골 이정표가 있는 능선 배딩이재에 올라선다. 오른쪽 방향 ‘매봉 5.2㎞, 백운산 정상 9.6㎞’를 가리킨다. 왼쪽 쫓비산은 3.9㎞이다. 재에서 갈미봉 쪽으로 10여분쯤 올랐을까. 갑자기 ‘후두둑’ 소리와 함께 고라니 한마리가 등산로를 가로질러 쏜살같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엉겹 결에 사진을 찍었으나 아뿔싸, 꼬랑지도 찍혀있지 않았다.

 

 


덩치가 큰 야생동물을 쉽게 볼 수 없는 요즘 느닷없는 고라니의 출현에 흥분된 마음이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 산에서 멧토끼를 본 것은 수년 전의 일이다. 웅석봉 계곡에서 은밀하게 물을 마시던 야성의 오소리를 본 것은 2년 전의 일, 거제 망산 기슭에서 놀라 달아나는 멧돼지 가족은 지난해 1월에 봤다. 숲을 벗어나면 한순간 하늘이 열리고 양쪽 방향이 트이는 안부가 나타난다. 오른쪽에 불쑥 솟은 2개의 암봉 억불봉이, 그 옆에 뾰족한 것이 백운산이다. 억불봉은 가깝게 보여도 매봉과 백운산을 거쳐야 하기에 적어도 15㎞가 되는 거리이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면 공원 속 산책로 같은 아름답고 고즈넉한 길이 한동안 계속된다.

관동마을 출발 1시간 20분 만에 갈미봉에 닿는다. 흔한 정상석 대신 팔각정자가 서 있고 소나무에 ‘호남정맥 갈미봉 519m’라는 판넬이 걸려 있다. 정자를 세우기 위해 주변에 나무를 베어서 그루터기가 남아 있다.

발 아래 도사리 다사마을이 흥미롭다. 선비들이 많이 배출돼 그렇게 부른다고. 집집마다 나무를 많이 심어 마치 숲속 전원마을처럼 보인다. 조금 떨어진 곳에 다압중학교가 있다.

갈미봉을 떠나서 20여분, 다사마을로 곧장 내려가는 바람재, 조금 더 진행하면 물개를 닮은 바위를 만날 수 있다. 물개라고 생각했는데 누에바위라는 이름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부터 숲은 더욱 울창해져 터널을 이룬다. 뿌리부근에서 갈라진 가지가 다시 하나로 붙었다가 자라는 기이한 참나무도 목격됐다.

 

▲ 섬진강 조망, 오른쪽 산은 지리산 형제봉줄기이다.



낮 12시 5분 쫓비산 정상, 광양백두산악회에서 정상석을 세워놓았다. 동쪽으로 열린 조망,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섬진강 줄기가 다가온다. 백사장과 코발트빛 강물이 새끼줄을 꼬듯 어울려 큰강이 돼서 흘러간다. 굽이치는 흐름을 따라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강 언저리에 300년의 숲 송림과 하동읍시가지가 있고 더 아래 끝에는 금오산과 남해가 아스라이 보인다.

정상을 떠나 내림길, 앞서 고라니를 봤었는데 이번엔 뱀이 나타났다. 청매실농원·토끼재 갈림길에선 또 지네 때문에 혼비백산했다. 쉬기 위해 앉으려는데 나무둥치 밑에서 손가락만한 지네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40개의 붉은 발을 가진 지네는 검은 몸뚱이와 강렬한 색대비를 이뤄 소름을 돋게 한다. 더욱이 지네에 물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름돋는 이유를 안다. 한자어로 오공(蜈蚣), 토충(土蟲), 백족(百足)이라고 부른다.

갈림길에서 직진 진행하면 토끼재로 간다.

오후 2시 20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하산길을 택한다. 20여분쯤 내려갔을 때 매화군락과 대숲에 둘러싸인 청매실농원이 아래에 보인다. 수백개에 달하는 옹기가 바둑알처럼 정렬돼 있다. 농원을 일군 홍쌍리 여사는 1965년 이곳으로 시집와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2000주가 심어진 산비탈을 가꿔 지금의 청매실 농원을 세운 신지식인 농업인이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를 두고 차가운 눈 속에서 피어난 매화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의 시부 김오천은 1917년부터 이곳에다 매실나무를 심었다. 일꾼 30여명을 거느리기도 했던 그는 어느 추운 겨울, 그들을 시켜 농원 사이로 쫓비산 직전까지 길을 냈다고 한다.

오후 3시께, 섬진마을에 도착했다. 아주 옛날 섬진강가에 마음씨 착한 처녀가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부엌으로 뛰어든 두꺼비를 가엽게 여긴 처녀는 밥을 주고 살 곳을 마련해 주어 같이 지냈다. 어느 해 이 마을에 큰 홍수가 나 섬진강이 범람해 마을 전체가 강물에 힙쓸리고 착한 처녀도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때 두꺼비가 나타나 처녀를 등에 없고 헤엄쳐 빠져나왔다. 그러나 지친 두꺼비는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처녀가 닿은 곳을 두꺼비나루라 하고 두꺼비 섬(蟾)자를 써 섬진(蟾津)이라고 불렀다. 이 마을엔 두꺼비를 기려 지금도 처녀를 업고 있는 두꺼비 조형물이 많이 세워져 있다.

핀치새가 주인 없는 빈집을 떠나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는 이유는 담장에 걸쳐 익어가는 붉은 물앵두 때문이었다.

섬진마을에는 광양시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다. 차량회수를 위해 자전거를 빌려 타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관동마을까지 기분좋은 라이딩을 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새끼뱀


 
물앵두
지네

가지가 붙은 참나무
누에바위
단풍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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