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경일춘추
'스승’이라는 이름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5.13  19:33:1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박상재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푸른 오월과 함께 찾아 왔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즉 티이처+멘토의 뜻을 갖고 있다. ‘성현의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 의혹을 풀어주는 자’로 해석함이 옳으리라 생각된다. 어느 새 ‘선생님’ 소리도 어렵게 듣는 시대가 됐고 스승보다 직업인 교사로 선호하는 것이 씁쓰레하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 하의 폴란드 작은 마을에서 독일군들이 폴란드 학생사이에 섞여 있는 유대인 아이들을 골라 가스실로 가는 트럭에 태우려고 하자 공포에 질린 제자들을 두 팔로 꼭 안아 주며 “무서워할 것 없단다. 선생님이 너희와 함께 할 테니 아무 걱정 말아라”하며 트럭을 타자 독일군 병사하나가 “당신은 유대인이 아닌데 왜 가스실로 가려고 하오?”라고 하자 “제자들의 마지막을 어찌 그냥 보고 있을 수 있겠소!”라고 일갈하며 트레물렌카의 가스실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의 손을 놓지 않고 최후를 맞이한다. 이 보다 훌륭한 스승이 있는가? 각종 교육학이 난무하고 교육이론이 홍수처럼 밀려오지만 참 스승을 이야기 할 때 그 어떤 스승보다 나는 위대한 스승이라 힘주어 말하고 싶다. 히틀러에게 학살된 동포들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기념관 뜰에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제자들을 두 팔로 꼭 껴안고 있는 코르자크 선생님의 동상이 우리를 지켜보며 사도(師道)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부모와 스승이 있음을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노자의 스승 상용은 임종 때 제자 노자에게 “노자야, 내 입을 벌려 보아라. 이빨이 있느냐? 없습니다! 혀는 있느냐? 그래, 강한 것은 스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느니라!” 스승의 이 한마디를 새겨들은 노자는 평생의 자기 철학관이 담긴 유약겸하(柔弱謙下)를 물에 비유해 설파하고 실천한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습(時習)’뜻도 논어의 첫 머리에 나오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따온 것으로, 재주만 믿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평생 사도의 길을 가야하는 교사들에게 당부한다. 정조가 가장 사랑한 이덕무의 착념삼일처럼 ‘어제는 무엇을 가르쳤고 오늘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으며 내일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끊임없이 반문하고 배우고 익혀라! 경남교육연수원에 걸려 있는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며 배우고 서로 성장하라)’의 글귀를 오월의 하늘에 새겨 본다.
 
박상재(서진초등학교장.진주교원총연합회장)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