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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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8.05.0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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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정신을 전형적으로 구현한 개성상인
 
개성상인_3
개성상인



옛날에 우연히 개성사람과 수원 사람이 함께 길을 가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는데, 짚신이 닳을까 염려되어 둘 다 짚신을 허리에 차고 맨발로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저만치서 이름 있는 가문의 규수가 두 사람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체면상 짚신을 신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짚신을 다시 신었다. 그런데 개성 사람은 짚신을 신고 몇 발짝을 걸어가다가 규수 일행이 지나가자 곧바로 짚신을 벗어 먼지를 털고 얼마나 닳았나 살펴보고는 다시에 허리에 찼다. 반면에 수원 사람은 길 옆에 멈춰 선 채 짚신을 신더니 먼 곳을 두리번거리는 척하며 딴전을 피웠다. 그러다가 규수 일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곧 짚신을 다시 벗어 먼지를 털고는 허리에 찼다. 민담으로 전해지는 내용이지만, 개성상인과 수원상인의 지독한 절약정신을 풍자한 이야기다.

개성상인이라고 하면 개성부내의 상설점포인 시전(市廛)상업, 전국적 행상(行商)과 도고(都賈)상업, 해양을 무대로 한 선상(船商)활동,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무역, 나아가 인삼재배와 홍삼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나감으로써, 오늘날 상인정신을 전형적으로 구현한 상인집단을 일컫는 것이다. 개성상인은 조선시대 상업 활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이들의 활동은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다. 대한제국 말엽에서 일제강점 초기까지 개성의 상업현황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개성상인들은 상품유통 경로상의 위치에 따라 객주(客主), 도고상(都賣商), 거간(居間), 소매상, 좌상(座商), 지방행상인 장군(場軍)으로 구분되고 있다. 거간은 다시 일반 상품을 중개하는 당화거간(唐貨居間), 금전의 중개를 담당하는 환전거간(換錢居間), 인삼거래를 중개하는 삼거간(蔘居間)으로 구분되었다. 장군은 소자본으로 화물을 등에 지고 육로행상을 하는 보부상(褓負商), 상당한 자본으로 말에 상품을 운반하는 주객(主客) 또는 차인(借人)과 차인(差人)으로 다시 구분되었다. 이러한 상인 중에서 시전상인은 도매상과 좌상을 겸했던 부상이었다.

개성상인들이 상업에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려시대 개경이 국제무역도시로서 번성했던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개경은 국제무역항인 예성강 입구의 벽란도를 거점으로 외국사신의 빈번한 왕래에 의한 공무역과 외국상인에 의한 사무역이 번창 하여 상업도시로 발전하였다. 이때부터 개경의 상인들은 송도상인(松商)이라고 불려졌다. 개성상인의 본령은 시전상업보다는 전국의 시장을 무대로 전개된 상업활동과 국제무역이었다. 개성상인들은 대부분 소나 말을 소유하고 여러 명이 행상단을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행상들은 행상단을 꾸려 활동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 상인과 달리 상인조직이 발달하였다. 조선초기에는 물주(物主)인 부상(富商)과 사용인인 차인(差人)이 존재했지만, 조선후기에는 조직이 더욱 세분화되어, 차인·서사(書士)·수사환(首使喚)·사환(使喚) 등으로 구성되는 상업사용인(商業使用人) 체제가 정립되었다. 수사환과 사환은 상업활동의 구체적인 업무를 담당하였다.

개성상인들의 상업경영은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置簿法)이라는 독특한 복식부기의 창안, 상업사용인 제도, 독특한 금융제도인 시변제(時邊制) 등 각종 상관습의 합리적 운영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본축적과 그 자본의 생산부문에의 투자는 우리나라 중세 말기의 근대적 지향을 보여주는 징표로 이해되고 있다. 개성상인들의 상업활동에서 특기해야 하는 점은 급차질(給次秩), 봉차질(捧次秩), 이익질(利益秩), 소비질(所費秩) 등 네 개 질로 나누어 계산하는 고유한 과학적 복식부기법인 송도사개치부법을 고안했다는 점이다. 한편 개성지역에서만 존재했던 독특한 금융관행인 시변제(市邊制)는 자금의 대여자와 차용자가 중개인을 매개로 물적 담보 없이 신용을 바탕으로 대차관계를 맺는 제도였다. 시변제의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환중개인이었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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