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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남녀라는 자연의 구별 초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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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6  18: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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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허리가 18.5인치라는 가학적인 수치가 되도록 코르셋을 조인다. 코르셋을 아무리 조여도 20인치보다 줄어들지 않는 날에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한다. 과거 사교계에서 여성들과 코르셋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나폴레옹은 그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코르셋은 인류를 멸종시키는 암살자다. 이 교태스러운 옷, 그리고 (그것을 채택하고 있는 이 사회의) 저급한 취향이 여자를 고문하고, 살해하고, 그들의 미래 자손을 파괴한다. 코르셋은 경망스럽고 지독한 데카당스의 산물이다’고 말했다.

현대에 와서 사교 파티를 위해 코르셋을 조이는 일은 없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코르셋을 여성에게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MBC 임현주 아나운서는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화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여성 아나운서들의 안경 착용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남성 아나운서들이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하는 것은 낯선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봤을 때, 지금까지 특히나 여성 아나운서들이 뉴스 진행과 별개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의 여성들에게 부여된 그 시절의 코르셋인 것이다.

20세기 중반의 실존주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존이란 존재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다른 요소에 의해 존재의 본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여성들은 코르셋이라는 사회의 가학적인 틀 안에서 만들어져 왔다.

우리 사회는 여성과 남성의 실체를 구성하는 본질을 자주 규정하려고 한다. ‘여성스러움’과 ‘남자다움’이라는 기준에 따라 인간을 생물학적인 성(性)으로 나누는 것이다. 앞서 여성들의 모습을 어떤 틀 혹은 기준으로 나눴듯 남성들 또한 ‘남자다움’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특정 틀에서 평가받아야 했다. 키 180cm 미만의 남자들은 ‘루저’라 불렸고, ‘마초적’인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이른바 ‘감성적인 남자’는 이해받지 못했다.

물체는 본질이 실존을 앞선다. 수단으로의 기능이 없으면 실존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 수단으로 사용되는 물체와 달리 인간에게는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선택과 행동에 의해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이 주어진 현실 세계를 자유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남녀가 그 자연의 구별을 초월해서 각각의 인격체로만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이희성 (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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