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서 푼과 만 냥 사이
어머니, 서 푼과 만 냥 사이
  • 경남일보
  • 승인 2018.05.16 1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상균 (농업인·이야기를 파는 점빵대표)
공상균
상하이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딸을 만나고 오는 길, 공항에서 아내는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바쁘게 가느라 김치를 챙기지 못한 아쉬움을 눈물 몇 방울로 달래려는 모양이다. “괜찮아 엄마, 한 달 반만 지나면 김치 실컷 먹을 건데 뭐” 딸이 생글거려도 마음이 편치 않은 듯 몇 번이나 안아주며 “미안해”를 연발한다. 3박 4일 동안 우리를 위해 여행 일정을 짜고 안내를 해 준 딸에게 엄마 표 김치 한 가닥 먹이지 못했으니, 아내 심성에 비추어 볼 때 후유증은 며칠 이어질 것 같다. 서툰 중국어로 맛있는 음식을 골라 주문해 준 딸이 대견하다며, 집에 돌아와서도 눈시울 붉히는 아내를 보며 속담 하나를 떠올려본다. ‘어머니는 살아서는 서 푼이고 죽으면 만 냥이다’ 어머니의 존재란 살아계실 때는 없는 듯 가볍게 여기다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부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겠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도 감출 수 없다. 어머니의 가치를 만 냥에 비기겠는가만, 생전에 그 가치를 인정해 드리는 일이 왜 이리도 어려운지. 자식 얼굴 보러 만 리길 달려가면서 가까이 계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기 위해 달려갈 시간은 왜 그리도 모자라는지. 늘 후회하며 철이 드는 모양이다. 이번 여행에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갈까 생각도 했지만, 고민은 잠깐. 아내와 둘이만 갔다. 무릎이 약해 많이 걷지 못하는 어머니와 함께 가면, 서로 힘들 것 같다는 내 얄팍한 계산이 앞섰기 때문이다.

18세에 자신을 낳고 이태 뒤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동화작가 정채봉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원이 없겠다’고 했을까. 하루가 반나절이 되고 다시 반시간, 그리고 단 5분만이라도 엄마의 휴가를 바라는 시인의 절박한 심정을 읽는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직 어머니 살아계시니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는 작가의 어린 아이 같은 고백을 들으니 새삼 어머니의 존재가 부요하게 다가온다. 어머니 연세 올해 여든이니 앞으로 몇 년 더 사실지 알 수 없다.

올 봄, 차 만들 쑥을 캐기 위해 산에 함께 갔을 때, 어머니께 한 마디 했다. “건강하게 지내시며 앞으로 십 년만 더 쑥 캐 주세요” 김밥 몇 줄로 허기를 달래며 쑥을 캐는 모자간의 시간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소풍에 가깝다. 이 소풍이 십 년 이십 년 더 이어진다면 이에서 더 좋은 일 어디 있겠는가.

공상균 (농업인·이야기를 파는 점빵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